시와 노래와 할배 자세히보기

2-8 김수호-창작학습시/김수호♡미발표시 - 2 153

운명을 부른 이름 - 김수호 (1940~ )

운명을 부른 이름 - 김수호 (1940~ ) 내 이름은 빨리 부르면 수호가 수오로 다시 소가 된다 선생님은 '김소, 김소' 친구들은 '소야, 소야' 후배들은 수호 형이라고 높여서 '소영, 소영' 하고 불렀다 한 후배가 소개한 여학생이 내게 되물었다 '이름이 소영이세요?' 거의 날 '소'라고 부르는 걸 사람으로 들었다니 싫지 않았다 젊은 날, '황소'에 뽑힌 게 운명을 부른 이름 때문일까 (190124)

천하벽창호 - 김수호 (1940~ )

천하벽창호 - 김수호 (1940~ ) 1.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아 살림이 미두하면 좋으련만 내 몫 빼앗길까 단김에 나눠 먹자며 보이는 족족 입에 쓸어 넣다 길바닥에 나앉더라도 다 함께 굶는 것이니 상관없다는 듯이 씨나락까지 꺼내든다. 2. 모르면 배워야 배워서 알았으면 따라야지 알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과학은 시궁창에 쳐박고 픽션에 눈물 짜며 나 혼자 망하는 게 아니라 다 함께 망하는 것이니 상관없다는 듯이 눈에 거스르면 갈아친다. 3. 핵에 미사일로 미국과는 전쟁을 피하며 우리는 무릎 꿇린다 북핵의 목표가 짚어 볼 것도 없이 한반도를 날로 먹자는 건데 전쟁만 안 나면 그만 다 함께 노예 되는 것이니 상관없다는 듯이 퇴상에 혼밥도 꿀맛이다. (171023)

살수殺手의 정체 - 김수호 (1940~ )

살수殺手의 정체 - 김수호 (1940~ ) 새봄의 기운 받으며 마른내의 바닥에서 뚝을 기어올라 머리끝까지 따라잡고 아무리 품이 넓어도 기어히 덮고 마는 살수殺手 교수대 위로 천천히 올라 밧줄을 목에 걸고 한가닥 숨이 단풍처럼 떨어져도 가을 햇볕까지 가리며 겨울나기 마저 막는 잔혹함 앙상한 뼈대가 잡힐 때까지 씨눈 하나 없게 몇 년인들 어떤가 세상 끝까지 쫓아가 확인 사살하듯 숙살肅殺하는 피에 주린 끈기 아! 그 이름을 알지마는 스스로 밝히지도 부르고 싶지도 않은 넝쿨, 그리고 숙주의 진액 한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먹는 기생충 (171101)

환승 - 김수호 (1940~ )

환승 - 김수호 (1940~ ) 이승의 종점에 이르기 전에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올리리 한평생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영면을 허락하심에 대하여 마음속을 깨끗이 정리하리 기억의 빼닫이를 열고 친지들에게 하직 전화를 하리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자, 이어서 부모님 은혜와 형제자매의 우애를 뒤져 보며 아픈 기억은 지우고 고운 추억만 간직하리 자식들을 가훈에 품고 북돋으리 환승역에서 내리며 끝으로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말하고 이별의 포옹을 하리 나 홑몸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플랫폼을 가로질러 영원의 열차로 갈아타리 행복의 포만감에 취해 영원으로 환승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리석어 쉽지 않았던 삶이 죽음에도 짐이 되어 영혼의 길을 망치지 않기를 죽음의 길은 삶 보다 어렵지 않기..

가슴에 신전을 - 김수호 (1940~ )

가슴에 신전을 - 김수호 (1940~ ) 내 가슴에 신전을 세우자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흠 없고 깨끗한 양심으로 나만의 성전을 꾸미자 그 참한 곳에서 무시로 하느님과 독대하여 나의 생활을 고백하고 회개하자 말갛게 마음을 씻어내자 떳떳이 소원을 기도하자 그리고 주인 앞의 강아지처럼 하느님께 매달려 늘 깡충깡충 희망에 살자 (180115)

차악次惡의 본질 - 김수호(1940~ )

차악次惡의 본질 - 김수호(1940~ ) 쓰나미 덮쳐 오는 악몽 물살 앞에 놓인 목숨 공포의 손아귀에 잡힌 가슴이 잠 깨며 이어지는 상념 나와 처자식 중 택일하라니 나 살자고 처자식을 어찌 놓으리 살아도 죽음만 못한 삶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하다 처자식 위해서라면 닥치고 버려도 되는 게 목숨인지 딱 하나 넘지 못하는 벽 쓰나미마저 틀어쥔 하늘의 뜻 앞에, 무얼 어쩌라고 최선을 다해 버틸밖에 삼손의 괴력을 간구하며 죽기 살기의 단판에선 최선 아니면 최악이 있을 뿐 차-선악은 모두 말 장난 (170505)

이젠 알았니 - 김수호 (1940~ )

이젠 알았니 - 김수호 (1940~ ) 왜 나만 깨우지 않았어요 까악까악 (엄마엄마), 홀로 날아오르는 외톨이 까마귀야 엄마가 안 보여 화가 나니, 왜 길도 모르는 먼 데로 데려왔어요 까악까악, 찻길 넘어가는 길 잃은 까마귀야 먼저 떠난 엄마가 원망스럽니, 왜 혼자 살아라 귀띔하지 않았어요 까악까악, 아파트 너머 사라지는 어린 까마귀야 앞서간 엄마 뜻을 이젠 알았니. (170821)

철없는 코스모스를 보며 - 김수호 (1940~ )

철없는 코스모스를 보며 - 김수호 (1940~ ) 계절로는 한 복판의 여름 폭염경보에 더하여 하계 올림픽 열기로 바스락 소리나게 마른 빌딩들 그 사이의 번듯한 공터에 웬 해운대의 파라솔 늘어서서 땡볕 샤워를 하는 철없는 코스모스, 혹시 더위 먹어 기진한 나를 잠시 선선한 가을로 미혹하는 플라시보인가 계절이 가불해주는 포퓰리즘인가 늘 생긋거리기만 하던 게 보초처럼 버티려니 배배 꼬일밖에 어느 바람의 꼼수에 제철을 버렸느냐, 처량쿠나 이제부터는 네 모양이 울밑에 선 봉숭아로 보일 테니 (120729)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 김수호 (1940~ )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 김수호 (1940~ )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슬프다 어느 시인이 이렇게 말하오 그러나 외람되게 한 마디 보태고 싶소 슬프더라도 나쁘지는 않다구요 융로隆老가 지난 날을 돌아보는 건 라떼에 묶인 남 탓에 흉 버무려 수염 쓰다듬는 자만에 취하려 함이 아니요 내 고옥의 기틀을 점검하는 일이요 날 매어 놓은 질긴 인연의 굴레에서 매듭 찾아 풀고, 단 하루라도 구름처럼 높이 올라 조감鳥瞰도 해보구요 강물처럼 깊이 스며 치보려 함이라오 미래 위해 역사를 잊지 말라 권하지요 영광보다 오욕이 설쳐대고 지나온 길과 숨바곡질하는 갈 길의 타래에 저승길이 슬그머니 끼어들더라도 (171118)

눈동자 - 김수호 (1940~ )

눈동자 - 김수호 (1940~ ) 네 눈동자가 어디를 향했느냐 하늘만 쳐다보지 마라 떠 있는 게 해와 달, 별과 구름뿐이잖니 거기 하느님이 앉아 계시더냐 땅만 내려다 보란 말이 아니다 흙과 돌맹이에 담배꽁초뿐 거기 다이야 반지가 임자를 기다리더냐 좌우도 살피며 걷자는 말이다 산과 들, 바다, 그 건너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각양각색의 이웃들 왜 자꾸 눈을 깜빡거리니 그래, 눈만 뜨고 살 수는 없지 두려운 게 정녕 마음에 이는 구름이냐 천둥번개냐 눈을 감고만 살란 말도 아니다 지레 겁먹고 흔들리지 마라 지난 날의 거울에 앞날을 비춰 보며 차분히 가자는 말이다 눈동자가 둥근 건 치우치지 말고 두루 살피란 뜻 명심하고 (1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