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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수호-창작학습시 153

빈말로 추억을 - 김수호 (1940~ )

빈말로 추억을 - 김수호 (1940~ ) 지난달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만나자던 그 친구 추위 가시면 점심 하며 얘기 나누자던 그 친구 새해 인사도 못 나누고 그 다음도 그 점심도 몽땅 싸 들고 떠나 버리다니 내 가슴은 바람 든 무 속 누군들 언젠가 친구와 인사 나누며 헤어진 게 마지막이 될 터인데 빈말로 추억을 삼게 하고서 먼저 떠나자니 어찌 제 속인들 편했을까 (170214)

떠나 버린 죽마고우에게 - 김수호 (1940~ )

떠나 버린 죽마고우에게 - 김수호 (1940~ ) 타향에서 타향 친구들이 모두 날 떠나갈 때 난 외로워도 그들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고향에서 고향 친구들이 제각각 서로를 등질 때 난 그리움에 너희 곁으로 돌아왔다 환향의 길목에서 영원으로 떠나 버린 너희들 난 영문을 모르겠다 내가 이토록 너희들 애를 끊어 놓더냐 (121110)

파스카의 신비 - 김수호 (1940~ )

파스카의 신비 - 김수호 (1940~ ) 축산물직매장의 홍보 플래카드 소 잡는 날 (목, 금) 국내산 소고기 (한우,육우) 그 아래 종일 세워둔 사장님의 승용차 국산 대형 최고급 브랜드 제네시스(GENESIS) 는 구약의 창세기 그 다음 장은 출애급기(Exodus) 그 안에 파스카(Pascha)*의 제물은 흠없는 어린 양 양 대신 소의 희생제물로 거듭난 개명開明의 축복이 아직 믿음이 없는 사장님에게 (090527) * 출애급기(Exodus)의 파스카(Pascha)/과월절(過越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일을 기념하는 유대교의 축제일. 하늘의 천사가 밤중에 이집트의 각 집의 맏아들을 죽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에 그대로 지나가서 재앙을 받지 않은 일..

바다와 섬 - 김수호 (1940~ )

바다와 섬 - 김수호 (1940~ ) 섬을 둘러싼 수평선이 담장으로 보이면 빠삐옹이 떠오르지 않느냐 그 장벽을 넘을 지혜의 사다리를 만들자 네가 밟고 선 섬이 작고 척박하면 바다속이 보이지 않느냐 그 깊은 보고를 캐는 불퇴전의 의지를 다지자 바다와 섬은 하나 함께 울고 웃는 그 지혜와 의지로 무장하면 모두 얻으리니 어찌하여 망설이느냐 (170830)

제주도에 눈 오는 날 - 김수호 (1940~ )

제주도에 눈 오는 날 - 김수호 (1940~ ) 섬 테두리 지우는 하얀 손 산길 막아서자 육지 손님들은 숙소에 내려치는 화풀이 연속 고와 스톱의 불호령에 애먼 관광차만 TV 속에서 엉기고, 해안가에서 요절하는 여린 손 사귈 겨를 없는 아이들은 질척한 땅 대신 게임 바다로 풍덩 졸지에 절친 잃은 강아지도 제 털에 코 박고 뼈다귀 꿈에 빠지고, 웃뜨르*에서 분주한 젖은 손 쫓겨난 까마귀의 상처를 씻는 솔밭 멀리 날것들의 설움 간간이 새 주인 까치떼의 하늘 찢는 악다구에 안쓰럽게 부르르 떨고만 섰다. * 중산간 지대 (제주 사투리) (101216)

삶의 진액(津液)을 찾아 - 김수호 (1940~ )

삶의 진액(津液)을 찾아 - 김수호 (1940~ ) 영원으로 닫히는 묵은해를 보내며 선악 명암이 뒤엉켜 드나든 내 마음의 낡은 문 악의 출입이 두려워 빗장 걸어 둔 게 선도 막고 자신마저 가둔 건 아니었는지. 빛으로 열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낯선 나날이 줄지어 들어설 내 마음의 새 문 자물쇠 채워 문전박대한 인연과 행운은 그간 다진 지구력과 퉁치더라도, 삶의 진액津液을 찾아 문 활짝 연 만큼 눈도 크게 떠야 하리. (091231)

파란 장미 - 김수호 (1940~ )

파란 장미 - 김수호 (1940~ ) 피멍마저 삭아 색 바랜 가슴의 묘판에 버려진 마지막 씨앗 한 톨 땀방울 흔적마저 지워진 다 타 버린 고랑에서 보란듯 솟아나는 재생의 새싹 가장 어렵게 가장 늦게 태어난 꽃 중의 꽃 가장 값진 고결한 기품 여린 살갗 뚫고 비치는 파란 핏줄 속으로 숨은 듯 흐르는 붉디붉은 피 (181002)

내 첫사랑 - 김수호 (1940~ )

내 첫사랑 - 김수호 (1940~ ) 웬일로 입이 댓 발이나 나온 게냐? 풀어 젖힌 윗도리에 고개 파묻고 혼자 돌아가니. 이 공원에다 그 사연을 털어 놔 보렴. 할배가 먼저 2학년 때의 비밀을 털어 놓을까? 그래, 내가 한 달간 입원했다 등교한 첫날 딴 애들이 다 외우는 구구단을 나만 버벅거린다고 내 짝꿍인 세무서 집 큰딸, 반에서 짱 예쁜 경자한테 핀잔 먹었지 뭐니. 오래 앓아서 공부 못한 걸 잘 알 텐데도 위로커녕 쫑알쫑알 나불대는 게 엄마한테 종아리 맞는 게 훨 낫겠다 싶더라구. 뿔나서 혼자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 너도? 여든 되도 그날 상처가 덧나는 걸 보면 그게 내 첫사랑이었지 싶은데 지금 걔도 나만큼 늙었겠지, 나랑 동갑이니까. 날 잊었더라도 살아만 있음 좋으련만. (18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