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 - 김수호 (1940~ )
웬일로 입이 댓 발이나 나온 게냐?
풀어 젖힌 윗도리에 고개 파묻고 혼자 돌아가니.
이 공원에다 그 사연을 털어 놔 보렴.
할배가 먼저 2학년 때의 비밀을 털어 놓을까?
그래, 내가 한 달간 입원했다 등교한 첫날
딴 애들이 다 외우는 구구단을 나만 버벅거린다고
내 짝꿍인 세무서 집 큰딸,
반에서 짱 예쁜 경자한테 핀잔 먹었지 뭐니.
오래 앓아서 공부 못한 걸 잘 알 텐데도
위로커녕 쫑알쫑알 나불대는 게
엄마한테 종아리 맞는 게 훨 낫겠다 싶더라구.
뿔나서 혼자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 너도?
여든 되도 그날 상처가 덧나는 걸 보면
그게 내 첫사랑이었지 싶은데
지금 걔도 나만큼 늙었겠지, 나랑 동갑이니까.
날 잊었더라도 살아만 있음 좋으련만.
(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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