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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동玄冬의 노래 - 김수호 (1940~ )

현동玄冬의 노래 - 김수호 (1940~ ) 나 또한 봄엔 얼마나 아름다운 꽃이냐며 청춘을 노래했소 여름엔 뙤약볕을 되레 고마워하며 산이며 바다를 찾았소 가을엔 풍성한 열매는 당연하다며 낙엽 길을 거닐었소 겨울엔 찬바람이 상처를 일깨우고 흰눈이 쓰라림을 덮어도 삶의 찬미를 뿜는 한소리에 아쉬움이 덮히지 않도록 새봄에게 다 맡기고 돌아서오 너 현동의 너그러움이여 그 자유의 쓸쓸함이여 (180830)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교실 창가에서 - 김용택(1948∼ ) [동아/ 2023-07-29]

교실 창가에서 - 김용택(1948~ )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교실 창 밖 강 건너 마을 뒷산 밑에 보리들이 어제보다 새파랗습니다 저 보리밭 보며 창가에 앉아 있으니 좋은 아버지와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하시던 형님이 생각납니다 운동장 가에 살구나무 꽃망울은 빨갛고 나는 새로 전근 와 만난 새 아이들과 정들어갑니다 아이들이 내 주위에서 내게 다가왔다 저 멀리 멀어지고 멀어졌다가는 어제보다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들이 마치 보리밭에 오는 봄 같습니다 (중략) 봄이 오는 아이들의 앞과 등의 저 눈부심이 좋아 이 봄에 형님이 더욱 그립습니다. 이 시를 쓴 김용택 시인은 초등학교 선생님을 38년 동안 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에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담은 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대대로 우..

백신 부작용 - 김수호 (1940~ )

백신 부작용 - 김수호 (1940~ ) 폭염에 건강 조심하라는 조간 기사 '연일 30도 넘는 불볕더위, 65세이상 뇌졸중 주의보' 란 머릿글에 이어진 간추린 내용인 즉, 무더위에 가장 위험한 그룹 -65세 이상 고령자와 4세 이하 소아 -심장병, 당뇨병, 비만 등 만성질환자 -이뇨제, 혈압약, 정신과 약물 복용자, 70대 산마루를 넘어서는 나이에 뇌졸중 증상으로 혈압약 복용한지도 20년이나 되는 나야말로 꼼짝없이 찍혔다, 이러고도 뭘 믿고 아직까지 유언장을 쓰지 않았는지 또,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이 순간에 뭘 믿고 자식들은 문안 전화 한 통이 없는지 이유인즉... 제 인생 제 책임 아이들 머리에 주사한 백신 부작용 (120808)

까탈스런 입맛 - 김수호 (1940~ )

까탈스런 입맛 - 김수호 (1940~ ) 웬 야단들이냐, 배고프다니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입맛에 맞는 게 없어 그렇다? 그럼 제가 직접 만들어 먹든지 입맛에 맞는 것 찾아 주유천하하든지 나라 안팎 가릴 것도 없고 이도 저도 아니면, 급한 대로 손닿는 것으로 빈 배는 채워야쟎겠냐 못 말리는 꼰대라고 비웃더라도 경험 만한 스승 없다 했으니 한마디 하자 이것저것 빼고 가리면서 까탈스런 입맛에 자존심 걸지 말고 제발 수저타령도 이제는 그만! 너나없이 온 나라가 '無수저'로 버텼었다 누렇게 뜬 얼굴에 손가락 빨며 입맛까지 추가할 틈이 어디 있다고. (170511)

[유희경의 시:선] 인간성에 대하여 [문화/ 2023-07-26]

다 먹은 옥수수와 말랑말랑한 마음 같은 것 - 주민현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매번 명쾌하게 물어보는 AI에게 너와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무릎을 꿇고 심장도 내어놓고 이윽고 우정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기까지 그런 것이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주민현 시집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인간성에 대하여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고 결론을 도출하는 일은 언제나 지난하다. 지쳐갈 때쯤, 참석자 중 하나가 새로운 SNS 서비스를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아직, 이라는 나의 대답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말을 잇지 않았고 나 역시 대꾸하지 않았으므로 대화는 거기까지였지만, 그의 반응이 의미하는 바는 짐작 간다. 시인도 시대에 발맞춰..

틈새 - 김수호 (1940~ )

틈새 - 김수호 (1940~ )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불볕 더위로 주 5회 걷기를 잠시 쉬던 참에 이어지는 폭우를 동반한 태풍 경보 뉴스 계속 쉴밖에 별 수가 없지 싶었다 새 주간이 되니 기온만 좀 내렸을 뿐 걷기 운동엔 지장 없을 것 같아 오후에 기회를 보고 걷기 시작한 게 여느 때처럼 연속 닷새를 걸었다 척척박사 일기 예보라 해도 끝없는 하늘 일을 어찌 다 꿸 수 있을까 먹구름도 한가지, 벼르다 보니 낡은 탓인가 찢긴 틈새를 내보였다 (180823)

[최영미의 어떤 시] 호박(南瓜歎)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조선/ 2023-07-24]

호박 (南瓜歎)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장마비 열흘 만에 모든 길 끊어지고 성안에도 벽항(僻巷)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졌네 태학(太學)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문안에 들어서자 떠들썩한 소리 들려 들어보니 며칠 전에 끼니거리 떨어지고 호박으로 죽을 쑤어 근근이 때웠는데 어린 호박 다 따 먹고 (중략) 항아리같이 살이 찐 옆집 마당 호박 보고 계집종이 남몰래 도둑질하여다가 충성을 바쳤으나 도리어 야단맞네 (중략) 작은 청렴 달갑지 않다 이 몸도 때 만나면 출세 길 열리리라 안 되면 산에 가서 금광이나 파보지 만 권 책 읽었다고 아내 어찌 배부르랴 (후략) (송재소 옮김) 정약용이 22세에 지은 한시인데 소설 장면처럼 사실적이고 표현이 치밀하다. 장마를 소재로 다산은 시를 여러 편 지었는..

당부할 게 없다 - 김수호 (1940~ )

당부할 게 없다 - 김수호 (1940~ ) 너희보다 먼저 살아 봐서 세상 물정 좀 안다고 그래도 너희한테 아무런 당부할 게 없다 너나없이 인생길 걸으면서 죄다 보고 느끼고 알았을 테니까, 일자리 만든다고 만만한 공기업에 대고 불호령을 내리니 정화, 생수, 전깃불 담당까지 이름없어 못 늘이는 자리 전산화 시대에 이런 코메디가 또 있더냐 두고두고 너희가 둘러쓸 빚인데,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마라 국민 지갑 털고 회사 등골 빼먹는 것 못 봤니 나라 망하는 길에 제발 네 몸 하나라도 온전한 길로 가거라 이거 하나 빼곤 당부할 게 없다. (181013)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수척1 - 유병록(1982~ ) [동아/ 2023-07-22]

수척1 - 유병록(1982∼ ) 슬픔이 인간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비가 와야 싹이 트고,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맺힌다고 했다. 물은 그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고, 기본 4원소의 첫 번째라고 했다. 이 말은 오래도록 사실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계속 사실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좋고 물이 좋다는 이 말을 영영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길을 집어삼키고, 집을 삼키더니, 사람도 삼켜버렸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구해야지 싶은데 구할 수가 없다. 사라진 사람은 나타나야지 싶은데 나타나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은 함께하고 싶은데 함께할 수가 없다. 비와 물이 사람을 삼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