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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수호-조선가슴시 153

[최영미의 어떤 시] 늦봄에 화창한다-제2수(和春深-其二) [조선/ 2022-05-16]

[최영미의 어떤 시] 늦봄에 화창한다-제2수(和春深-其二) [조선/ 2022-05-16] 늦봄에 화창한다-제2수 - 백거이(白居易 772~846) 어디에서 무르녹은 봄을 좋아할까? 빈천에 쪼들리는 집에 봄이 깊었으나 황량한 뜰 안 길 풀이 마구 자랐고, 사방 둘레에 시들은 꽃 흩어졌네 남편은 밭갈이에서 지쳐 돌아왔거늘, 아낙은 나가 고생스런 품팔이하네 곤궁에 빠진 그들에겐 평탄한 길도, 포야(褒斜)언덕보다 험난하여 걷기 힘드네 (장기근 옮김)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字: 樂天)가 지은 오언율시. 포야(褒斜)는 중국 섬서성에 있는 험준한 계곡이다. 5행의 ‘남편’(한시 원문은 ‘奴’)을 ‘종’으로 해석한 번역도 있는데 부인이 품팔이를 하는데 종을 부렸을까? 원진(元稹)이 쓴 ‘봄이 깊다(春深)’라는 시에 화..

[최영미의 어떤 시]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金顯承 1913~1975) [조선/ 2022-05-09]

[최영미의 어떤 시]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金顯承 1913~1975) [조선/ 2022-05-09]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金顯承 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마지막 두 행의 여운이 길다. 아버지의 ‘때’ 혹은 ‘죄’는..

[최영미의 어떤 시] [장미와 가시 - 김승희 (1952~) [조선/ 2022.05.02]

[최영미의 어떤 시] [장미와 가시 - 김승희 (1952~) [조선/ 2022.05.02] 장미와 가시 - 김승희 (1952~)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원시와 다르게 시를 배열함) 장미의 계절, 오월이 왔다. 꽃 중의 꽃, 장미를 노래한 시인은 많이 있었지만, 김승희 선생의 ‘장미와 가시’처럼 내 가슴을 때린 시는 없었다. “눈먼 손으로” ..

[최영미의 어떤 시] 4월의 노래 - 박목월(朴木月·1916~1979 ) [조선/ 2022-04-25]

[최영미의 어떤 시] 4월의 노래 - 박목월(朴木月·1916~1979 ) [조선/ 2022-04-25] 4월의 노래 - 박목월(朴木月·1916~1979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었다. 목련꽃 그늘을 지나, 이름 없는 항구를 지나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에서 ..

[최영미의 어떤 시] 가장 좋은 것 -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1812~1889) [조선/ 2022-04-18]

[최영미의 어떤 시] 가장 좋은 것 -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1812~1889) [조선/ 2022-04-18] 가장 좋은 것 -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1812~1889) 한 해의 모든 숨결과 꽃은 벌꿀 한 봉지에 담겨있고 광산의 모든 경이로움과 풍요는 어느 보석의 중심에 박혀있고 바다의 온갖 빛과 그늘은 한 알의 진주 속에 맺혀있다: 숨결과 꽃, 그늘과 빛, 놀라움과 풍요 그리고-이것들보다 높은 곳에 있는- 진실, 보석보다 더 빛나는 믿음, 진주보다 더 순수한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진실, 가장 순수한 믿음 -이 모든 것들이 한 소녀의 키스 속에 있었다 영국의 여성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남편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마지막 시집에 수록된 “Summum Bonu..

[최영미의 어떤 시] 봄 - 주병권 (1962~) [조선/ 2022-04-11]

[최영미의 어떤 시] 봄 - 주병권 (1962~) [조선/ 2022-04-11] 봄 - 주병권 (1962~) 지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아도 지난 계절은 돌아오고 시든 청춘은 다시 피지 않아도 시든 꽃은 다시 피고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아도 빈 술잔은 채워지고 짧지만 폐부를 찌르는 시.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 돌아오지 않는 시절의 대비, 다시 피지 않는 청춘의 비유도 훌륭하다. 내용도 좋지만 형식미도 갖추어 더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두 행이 한 연을 이루는데, 모두 두운을 주었고 서로 상반되는 서술어를 붙였다. ‘지난’으로 시작한 1연, ‘시든’이 반복되는 2연, ‘빈’으로 시작한 3연. 빈자리를 빈 술잔이 메울 수 있을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어 더욱 커지는 당신의 빈자리. 봄꽃들을 보기가 괴롭다. 행의..

[최영미의 어떤 시] 절규 - 박영근 (1958~2006) [조선/ 2022-04-04]

[최영미의 어떤 시] 절규 - 박영근 (1958~2006) [조선/ 2022-04-04] 절규 - 박영근 (1958~2006) 저렇게 떨어지는 노을이 시뻘건 피라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 네가 늘 걷던 길이 어느 날 검은 폭풍 속에 소용돌이쳐 네 집과 누이들과 어머니를 휘감아버린다면 너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가 내지르는 비명을 어둠 속에 혼자서 네가 듣는다면 아, 푸른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작은 새의 둥지도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박영근 시인의 유고 시집에 실린 ‘절규’는 화가 뭉크(Munch)의 그림 ‘비명’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다. ‘비명’의 탄생 배경에 대해 뭉크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도시와 피요르드 해안 사이에 펼쳐진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피곤했고 ..

[최영미의 어떤 시] 서시(序詩) - 이성복(1952~) [조선/ 2022-03-28]

[최영미의 어떤 시] 서시(序詩) - 이성복(1952~) [조선/ 2022-03-28] 서시(序詩) - 이성복(1952~)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내가 읽은 서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서시. 시집 ‘남해 금산’의 첫머리에 나오는 시인데, 젊은 날 이성복 시인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순수한 열정이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냥 그렇고 그런 상투적인 표현이 거의 없고, 쉬운 듯 어렵..

[최영미의 어떤 시] 꿈과 근심 - 만해 한용운(韓龍雲·1879~1944) [조선/ 2022-03-21]

[최영미의 어떤 시] 꿈과 근심 - 만해 한용운(韓龍雲·1879~1944) [조선/ 2022-03-21] 꿈과 근심 - 만해 한용운(韓龍雲·1879~1944) 밤 근심이 하 길기에 꿈도 길 줄 알았더니 님을 보러 가는 길에 반도 못 가서 깨었구나. 새벽 꿈이 하 짧기에 근심도 짧을 줄 알았더니 근심에서 근심으로 끝 간 데를 모르겠다. 만일 님에게도 꿈과 근심이 있거든 차라리 근심이 꿈 되고 꿈이 근심 되어라. 백여 년 전에 쓰여진 시인데 그다지 낡아 보이지 않는다. 근심이 많아 잠 못 이루는 밤, 밤은 길고 새벽은 짧다. 꿈에서 님을 만났는데 누군들 깨고 싶으랴. 시에 나오는 ‘님’은 누구일까?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에 나오는 ‘님’은 부처님이라고 국어 시간에 배웠다. 과연 그럴까? 그는 두 번이나 ..

[최영미의 어떤 시] 푸른 하늘을 -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조선/ 2022-03-13]

[최영미의 어떤 시] 푸른 하늘을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조선/ 2022-03-13] 푸른 하늘을 - 김수영(金洙暎 1921~1968)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김수영 시인이 1960년 6월15일에 발표한 작품. 4·19가 일어나고 두 달이 못 되어, 투쟁의 피가 마르기 전에 나온 시. 첫 연은 다소 산문적으로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수정되어야 한다”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의 하나로 이어진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