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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수호-조선가슴시 153

[최영미의 어떤 시] 세아회 날 장난삼아(洗兒戲作) - 소동파 (蘇東坡·1037∼1101) [조선/ 2020-07--25]

[최영미의 어떤 시] 세아회 날 장난삼아(洗兒戲作) - 소동파 (蘇東坡·1037∼1101) [조선/ 2020-07--25] 세아회 날 장난삼아(洗兒戲作)- 소동파 (蘇東坡·1037∼1101) 남들은 다 자식이 총명하길 바라지만 이 몸은 총명으로 일생을 망쳤으니 오로지 아이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무난하게 고관대작에 오르기만 바란다. (류종목 옮김) ‘세아회(洗兒會)’는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혹은 한 달째 되는 날 아이의 몸을 씻어주고 잔치를 벌여 축복해주는 일. 호주지주(湖州知州)로 부임한 소동파(본명은 소식·蘇軾)가 황제에게 올린 보고서에 조정을 풍자하는 내용이 있다 하여, 왕안석이 이끄는 신법파에게 탄핵당한 소동파는 사형에 처해질 뻔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는 황주 해주 담주에서 유배 생..

[최영미의 어떤 시] 바람이 불어 - 윤동주(1917∼1945) [조선/ 2022-07-18]

[최영미의 어떤 시] 바람이 불어 - 윤동주(1917∼1945) [조선/ 2022-07-18] 바람이 불어 - 윤동주(1917∼1945)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이 두 문장을 읽으며 나는 그를 이해했다. ‘저항 시인’이라는 외피에 가린 그의 생얼굴. 이토록 정직한 고백, 치열한 자기반성을 조선의 다른 남성 시인들 시에서 읽은 적이 없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문학청년. 그의 가장 큰 관..

[최영미의 어떤 시] 청포도 - 이육사(李陸史·1905~1944) [조선/ 2022-07-11]

[최영미의 어떤 시] 청포도 - 이육사(李陸史·1905~1944) [조선/ 2022-07-11] 청포도 - 이육사(李陸史·1905~1944)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가 맛있는 7월에 생각나는 시. 3행의 ‘주저리주저리’라는 우리말 의태어, 하늘(빛)이 포도 알에 들어와 박힌다는 표현이 멋지다. 하늘, 푸른 바다, 흰 돛 단 배, 청포,..

[최영미의 어떤 시] 나는 너의 남자 - 레너드 코언(1934~2016) [조선/ 2022-07-04]

[최영미의 어떤 시] 나는 너의 남자 - 레너드 코언(1934~2016) [조선/ 2022-07-04] 나는 너의 남자 - 레너드 코언(1934~2016) 당신이 연인을 원한다면,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할게요 당신이 다른 종류의 사랑을 원한다면 당신을 위해 마스크를 쓰겠어요 파트너를 원한다면 내 손을 잡아요 화가 나서 나를 때리고 싶다면, 여기 내가 서있으니 마음대로 해봐요 나는 당신의 남자 당신이 권투 선수를 원한다면, 내가 기꺼이 링 위에 올라가 줄게 당신이 의사를 원한다면, 당신 몸의 구석구석을 보살펴 줄게 운전기사가 필요하면 안으로 들어와 날 태우고 어딜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 너도 알잖아 나는 너의 남자… 이런 남자가 있을까? 레너드 코언의 ‘나는 너의 남자’를 처음 들었을 때 우..

[최영미의 어떤 시]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조선/ 2022-06-27]

[최영미의 어떤 시]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조선/ 2022-06-27]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흐르는 물결같이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어 ..

[최영미의 어떤 시] 마스나비 -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조선/ 2022-06-20]

[최영미의 어떤 시] 마스나비-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1207~1273) [조선/ 2022-06-20] 마스나비 -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1207~1273) 배를 타고 있던 학자가 선원을 보며 말했다 “이제껏 공부를 해본 적이 있소?” 뱃사람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학자가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했구려.” 뱃사람은 슬픔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엄청난 강풍이 불어와 배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뱃사람은 학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수영할 줄 아시오?” 학자가 대답했다. “못 하오.” 그러자 뱃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했구려. 지금 배가 가라앉고 있소.” (정제희 옮김) (원문과 다르게 행을 배열함) 가라앉고 있는 배에 탔..

[최영미의 어떤 시] 시계추를 쳐다보며 - 김일엽(金一葉·1896~1971) [조선/ 2022-06-13]

[최영미의 어떤 시] 시계추를 쳐다보며 - 김일엽(金一葉·1896~1971) [조선/ 2022-06-13] 시계추를 쳐다보며 - 김일엽(金一葉·1896~1971) 밤이나 낮이나 한결같이 왔다 갔다 갔다 왔다 언제나 그것만 되풀이하는 시계추의 생활은 얼마나 심심할꼬 가는가 하면 오고 오는가 하면 가서 언제나 그 자리언만 긴장한 표정으로 평생을 쉬지 않고 하닥하닥 걸음만 걷고있는 시계추의 생활을 나는 나는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나 역시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닌 그저 그 세월 안에서 세월이 간다고 간다고 감각되어 과거니 현재니 구별을 해가면서 날마다 날마다 늙어가는 인생이 아닌가 늙고는 죽고, 죽고는 나고, 나고는 또 늙는 영원한 길손여객이 아니런가 벽시계를 보며 이런 상념을 이끌어 내다니. 언어의 밀도는 ..

[최영미의 어떤 시] 6월이 오면 - 로버트 브리지스(1844~1930) [조선/ 2022-06-06]

[최영미의 어떤 시] 6월이 오면 - 로버트 브리지스(1844~1930) [조선/ 2022-06-06] 6월이 오면(When June Is Come) - 로버트 브리지스(Robert Bridges·1844~1930) 6월이 오면, 하루 종일 내 사랑과 향긋한 건초 더미 위에 앉아 있을래: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들이 만드는 햇살 눈부신 궁전들을 구경할 거야. 그녀는 노래하고, 나 그녀 위해 노래를 짓고 하루 종일 달콤한 시들을 읽어야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건초로 지은 집에 누워, 오, 인생은 즐거워라 6월이 오면. ‘건초로 지은 집(our haybuilt home)’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건초 더미를 쌓아 올려 만든 집에 누웠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건초 더미 위에 누워 아..

[최영미의 어떤 시] 담벼락 틈새에 피어난 꽃 -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 [조선/ 2022-05-30]

[최영미의 어떤 시] 담벼락 틈새에 피어난 꽃 (Flower in the Crannied Wall) -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1809~1892) [조선/ 2022-05-30] 담벼락 틈새에 피어난 꽃 (Flower in the Crannied Wall) 갈라진 담벼락에 피어난 꽃이여, 틈새에서 너를 뽑아 내 손에 들었네, 여기 너의 뿌리며 모두 다 있네, 작은 꽃-네가 무엇인지, 너의 뿌리와 전부를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신과 인간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1809~1892) 길을 걷다가 담벼락 틈새에 피어난 작은 꽃을 보고 황홀해하던 기억이 누구든 있을 것이다. 벽이든 아스팔트 바닥이든 자그마한 틈새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는 그 강..

[최영미의 어떤 시] 금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 로버트 프로스트 [조선/ 2022-05-23]

[최영미의 어떤 시] 금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조선/ 2022-05-23] 금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Nothing gold can stay)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1874~1963) 자연의 첫 초목은 금빛이었지, 오래 머물러 있기 어려운 색조. 그 첫 잎은 꽃이었지; 그러나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잎이 잎으로 가라앉고 에덴동산에 슬픔이 내려앉고, 새벽이 낮에 굴복하고, 어떤 금빛도 오래 갈 수 없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원문의 1행은 “Nature’s first green is gold”인데 ‘green’을 ‘초록’으로 번역하면 ‘초록이 금빛’이 되는 모순에 빠져, ‘초목’으로 번역했다. 영시 원문 6행에 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