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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수호-조선가슴시/최영미♣어떤 시 152

[최영미의 어떤 시] 소동파의 시 2편 [조선/ 2021.08.09]

[최영미의 어떤 시] 소동파의 시 2편 [조선/ 2021.08.09] 서림사의 벽에 쓴 시 (題西林壁) 가로로 보면 산줄기, 옆으로 보면 봉우리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보는 곳에 따라서 각기 다른 그 모습.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이 몸이 이 산속에 있는 탓이리. *금산사에 걸린 내 초상화에 쓴 시 (自題金山畫像)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같이 식었고 육신은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롭네 너의 평생 공적이 무엇이더냐? 황주 혜주 그리고 담주뿐이네. - 소동파 (蘇東波, 蘇軾·1037∼1101) (류종목 옮김) 한 줄로 붙인 ‘황주혜주담주’,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생을 정리하다니. 싸늘한 재가 되기까지 얼마나 뜨거운 파란만장을 겪었나. 황제가 시행하는 시험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

[최영미의 어떤 시] 퓌티아 찬가(Pythian) 8번 - 핀다로스 (기원전 518∼438) [조선/ 2021.08.02]

[최영미의 어떤 시] 퓌티아 찬가(Pythian) 8번 - 핀다로스 (기원전 518∼438) [조선/ 2021.08.02] /일러스트=양진경 퓌티아 찬가(Pythian) 8번 - 핀다로스 (기원전 518∼438) (…) 마라톤의 구석에서도, 고향 땅 헤라의 경기에서도 능력으로 아리스토메네스여, 삼관왕이었다 너는 상대방 네 명의 몸 위에 사나운 마음으로 몸을 던졌다(…) 하루살이여,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그림자의 꿈, 그것은 인간. 신이 허락한 영광이 다가오면 인간들은 밝은 빛과 부드러운 세월을 누린다 사랑하는 조국 아이기나여 (…) (김남우 옮김) 핀다로스는 테베 출신의 그리스 시인. 퓌티아 찬가 8번은 기원전 446년 퓌티아 경기의 레슬링에서 우승한 아이기나 출신 아리스토메네스를 위해 지은 노래. ..

[최영미의 어떤 시] 강촌(江村) - 두보(杜甫 712∼770) [조선/ 2021-07-26]

[최영미의 어떤 시] 강촌(江村) - 두보(杜甫 712∼770) [조선/ 2021-07-26] 강촌(江村) - 두보(杜甫 712∼770) 마을을 안아 강이 흐르는데 긴 여름의 대낮 한가롭기만! 제비는 멋대로 처마를 나들고 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할멈은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애놈은 바늘을 두들겨서 낚시를 만들고 있다 병 많은 몸 요긴키는 오직 약이니 이 밖에야 무엇을 또 바라랴? (이원섭 옮김) 한가로운 여름 한낮의 정취를 담담하게 묘사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시. 기교를 부리지 않은 듯 정교하게 짜인 작품이다. “마을을 안고”(抱村) 푸른 강이 흐른다. 2행의 ‘사사유(事事幽)’도 기막히다. 事를 겹쳐놓아 한가로움을 강조하며 동시에 7언을 완성했다. 3행의 ‘자거자래(自去自來)’와 4행의..

[최영미의 어떤 시] 화장을 하며 - 문정희 (文貞姬·1947∼) [조선/ 2021.07.19]

[최영미의 어떤 시] 화장을 하며 - 문정희 (文貞姬·1947∼) [조선/ 2021.07.19] 화장을 하며 - 문정희 (文貞姬·1947∼) 입술을 자주색으로 칠하고 나니 거울 속에 속국의 공주가 앉아 있다 내 작은 얼굴은 국제 자본의 각축장 거상들이 만든 허구의 드라마가 명실공히 그 절정을 이룬다 좁은 영토에 만국기 펄럭인다 금년 가을 유행색은 섹시브라운 샤넬이 지시하는 대로 볼연지를 칠하고 예쁜 여자의 신화 속에 스스로를 가두니 이만하면 음모는 제법 완성된 셈 가끔 소스라치며 자신 속의 노예를 깨우치지만 매혹의 인공향과 부드러운 색조가 만든 착시는 이미 저항을 잃은 지 오래다 시간을 손으로 막기 위해 육체란 이렇듯 슬픈 향을 찍어 발라야 하는 것일까 안간힘처럼 에스티 로더의 아이라이너로 검은 철책을 ..

[최영미의 어떤 시] 음주(飮酒) (제9수) - 도연명(陶淵明 365∼427) [조선/ 2021.07.12]

[최영미의 어떤 시] 음주(飮酒) (제9수) - 도연명(陶淵明 365∼427) [조선/ 2021.07.12] /일러스트=양진경 음주(飮酒) (제9수) - 도연명(陶淵明 365∼427)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허겁지겁 옷 뒤집어 입고 나가 문을 열어 그대 누구인가 묻는 내 앞에 얼굴 가득 웃음 띤 농부가 서 있다 술단지 들고 멀리서 인사 왔다 하며 세상을 등지고 사는 나를 나무란다 남루한 차림 초가집 처마 밑에 사는 꼴은 고아한 생활이라 할 수 없노라고 온 세상 사람 모두 같이 어울리거늘 그대도 함께 흙탕물을 튀기시구려 노인장의 말에 깊이 느끼는 바 있으나 본시 타고난 기질이 남과 어울리지 못해 (중략) 술이나 마시고 즐깁시다 나의 길은 되돌릴 수 없겠노라 (장기근이 옮긴 시를 발췌함) 묻고 답하는..

[최영미의 어떤 시] 이소(離騷) - 굴원(屈原 기원전 353?∼278년) [조선/ 2021.07.05]

[최영미의 어떤 시] 이소(離騷) - 굴원(屈原 기원전 353?∼278년) [조선/ 2021.07.05] 일러스트=백형선 이소(離騷) - 굴원(屈原 기원전 353?∼278년) 저는 아름다운 것에만 얽매여 아침에 충언을 올렸다가 저녁에 버림받았습니다(중략) 세상은 어지럽고 종잡을 수 없으니 제가 어찌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있겠습니까? 난초와 백지(향초의 이름)는 동화되어 더 이상 향기롭지 않고, 창포와 혜초도 보잘것없는 억새풀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향기로운 풀들이 지금은 어찌 저 냄새나는 쑥이 되었습니까? (중략) 난초는 믿을 수 있다고 여겼건만 어찌 속은 비고 겉만 아름다운 것입니까? (후략) (권용호 옮김) ‘이소’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며 중국 최초의 시인이라고 알려진 굴원(屈原)의 대표작...

[최영미의 어떤 시] 시드는 풀(何草不黃) - 작자 미상, 출전 ‘시경(詩經)’ [조선/ 2021.06.28]

[최영미의 어떤 시] 시드는 풀(何草不黃) - 작자 미상, 출전 ‘시경(詩經)’ [조선/ 2021.06.28] 시드는 풀(何草不黃) - 작자 미상, 출전 시경(詩經) 시들지 않는 풀이 어디 있으며 흐르지 않는 세월 있으랴마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끌려 나와서 사방으로 부역하며 돌아다니네 마르지 않는 풀이 어디 있으며 불쌍하지 않은 사람 있으랴마는 참으로 불쌍하다 우리 군사들 사람으로 사람 대접 받지 못하네 코뿔소 아닌가 범이 아닌가 광야를 서성이며 다니는 것들 불쌍도 하여라 우리 군사들 아침저녁 잠시라도 쉬지 못하네 (후략) (이기동 옮김) 중국 운문은 기원전 12세기경부터 춘추시대까지 노래 가사를 모은 ‘시경(詩經)’에서 시작되었다. 옛날에 시를 채집하는 관리가 있었고, 백성들의 시를 보며 왕이 풍속..

[최영미의 어떤 시] 6월의 언덕 - 노천명(盧天命 1912∼1957) [조선/ 2021.06.21]

6월의 언덕 - 노천명 (1912∼1957)아카시아꽃 핀 6월의 하늘은사뭇 곱기만 한데파라솔을 접듯이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 들어옴은어쩐 까닭이뇨보리밭엔 양귀비꽃이으스러지게 고운데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알겠다사슴이 말을 안 하는 연유도 알아 듣겠다 (…)  아카시아 꽃 못 본 지 한참 되었다. 세검정 골짜기에 울창한 아카시아 잔가지를 손으로 툭툭 건드려 꺾으며, 누구께 잎이 많이 달렸나? 친구와 내기를 하며 산길을 내려왔다. 아카시아 우거진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려 노천명의 ‘사슴의 노래’를 샀다.1958년 초판본을 그대로 인쇄한 표지가 멋스럽다. 여성 ..

[최영미의 어떤 시] 목욕하는 사람(沐浴子) - 이백 (李白 701∼762) [조선/ 2021.06.14]

[최영미의 어떤 시] 목욕하는 사람(沐浴子) - 이백 (李白 701∼762) [조선/ 2021.06.14] 목욕하는 사람(沐浴子) - 이백 (李白 701∼762) 향수로 머리 감았다 해서 갓 티끌 튕기지 말 것이며, 난초 담근 물로 몸 씻었다 해서 옷 먼지 털지는 마소. 사람 사는 세상 지나친 결백은 삼가하나니, 도에 지극했던 사람들 제 본색 감추기를 귀히 여겼더라네. 창랑(滄浪) 물가에 고기 낚던 이 있었다니 내사 그이나 찾아 가려네. (이병한 옮김) 이백의 시들을 읽다가 술 타령 달 타령에 염증이 나, 술이 나오지 않는 시를 찾다 “목욕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의 먼지를 털고, 새로 몸을 씻은 자는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턴다”는 굴원(屈原: 초나라의 문인 정치가)의 어..

[최영미의 어떤 시] 루바이(Rubái) 71 - 오마르 하이얌 [조선/ 2021.06.07]

[최영미의 어떤 시] 루바이(Rubái) 71 - 오마르 하이얌 [조선/ 2021.06.07] 루바이(Rubái) 71 움직이는 손가락은 쓴다, 썼다. 네 아무리 기도를 바치고 재주를 부린들, 되돌아 한 줄도 지울 수 없지. 눈물 흘린들 한 단어도 씻어낼 수 없지 루바이 96 아, 장미꽃 시들며 봄날은 사라지고 젊음의 향기 짙은 책장도 닫혀야하네 나뭇가지 위에서 노래하던 나이팅게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날아갔는지! -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ám 1048∼1131)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Rubái·페르시아어로 4행시)를 어떻게 해설할지, 손가락이 떨린다. 루바이 71번은 쓰는 행위 자체를 소재로 삼은 특이한 시다. 한번 쓴 뒤에 지울 수 없는 글, 한번 지나가면 지울 수 없는 인생. 눈물을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