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강촌(江村) - 두보(杜甫 712∼770) [조선/ 2021-07-26]
강촌(江村) - 두보(杜甫 712∼770)
마을을 안아 강이 흐르는데
긴 여름의 대낮 한가롭기만!
제비는 멋대로 처마를 나들고
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할멈은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애놈은 바늘을 두들겨서
낚시를 만들고 있다
병 많은 몸 요긴키는 오직 약이니
이 밖에야 무엇을 또 바라랴?
(이원섭 옮김)
한가로운 여름 한낮의 정취를 담담하게 묘사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시. 기교를 부리지 않은 듯 정교하게 짜인 작품이다. “마을을 안고”(抱村) 푸른 강이 흐른다. 2행의 ‘사사유(事事幽)’도 기막히다. 事를 겹쳐놓아 한가로움을 강조하며 동시에 7언을 완성했다. 3행의 ‘자거자래(自去自來)’와 4행의 ‘상친상근(相親相近)’의 반복과 대구도 멋지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제비.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 언뜻 심심해 보이나 두보의 강촌은 볼수록 절경이 펼쳐진다.
젊어서는 이런 시를 쓰지 못한다. 산전수전 다 겪고 기름기가 쫙 빠진 ‘미천한 몸(微軀)’(8행)이 쓴 여름 풍경. 두보의 시에 흔한 굶주림과 추위가 등장하지 않아 마음이 가볍다가 7행의 “병 많은 몸”에 이르러 뒤통수를 맞았다. 정강이를 못 가리는 짧은 옷을 입고 얼어터진 손발로 산에서 도토리를 주우며 모진 목숨을 이어가다, 슬픈 노래만을 남기고 그는 길에서 쓰러졌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 江村 (시 원문)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 두보(杜甫 712∼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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