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와 할배 자세히보기

2-4 김수호-문화새나시 130

[유희경의 시:선] 막차를 놓치고 - 김경후 [문화/ 2021-07-21]

[유희경의 시:선] 막차를 놓치고 - 김경후 [문화/ 2021-07-21] 막차를 놓치고 - 김경후 밤마다 막차다, 아무도 없어도, 나는 몰고 돌아가는, 밤, 막차다, 배차 간격, 없음, 인센티브, 없음, 유급휴가, 없음, 직업, 없음, 내가 탈 차, 없음, 기다릴 차, 없음, 막차에서 막차 사이는, 폐터널이지, 밤마다, 막차다, - 김경후, ‘원룸 전사’(시집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막차를 놓쳐버린 밤. 더 기다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홀가분해져서, 드문드문 흘러가는 차들을 구경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늦었더라. 저들은 왜 이제야 귀가를 하는 것일까. 글쎄, 열심히 사느라 그랬다기엔 오늘도 갈피를 잃고 보낸 거 아니었나. 종일 헤매느라 막차마저 놓치는 삶이라니. 실은 딴생각에 빠져 ..

[유희경의 시:선] 원하는 것을 원했던 - 김언 [문화/ 2021-07-14]

[유희경의 시:선] 원하는 것을 원했던 - 김언 [문화/ 2021-07-14] 원하는 것을 원했던 - 김언 나는 원했다. 무얼 원했고 어떻게 원했고 얼마나 원했는지 다 잊어버렸지만 내가 원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고 원했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원하기 위해 내가 있었고 네가 있었고 누구라도 있었을 테지만 - 김언 ‘나는 원했다’(시집 ‘백지에게’에서) 무섭도록 지친 밤. 혼자 서점에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급작스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아등바등 살고 있지. 뭐긴 뭐야. 돈을 벌려는 거지. 그랬더니 억울해졌다. 고작 요만큼 벌면서. 이만큼이나 에너지를 쏟으면서. 가지고 싶은 것들 참아가며 아껴야 하는 삶이라니. 벌떡 일어나듯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다. ‘다..

[유희경의 시:선] 익숙함의 소중함 - 마종기 [문화/ 2021-07-07]

[유희경의 시:선] 익숙함의 소중함 - 마종기 [문화/ 2021-07-07] 익숙함의 소중함 - 마종기 어떤 꽃은 듬직한 나무도 거느리지 못한 채 살아 있는 것만도 기쁜 듯 크기도 색깔도 향기도 별로 없이 맨날 싱겁게 웃으며 흔들거리네. 그런 꽃을 보면 편안해지고 만만해지고 따뜻해지고 느긋해져서 어깨가 다 가벼워지는데 - 마종기, 아내의 꽃(시집 ‘천사의 탄식’에서) 친구가 하소연한다. 아이가 장난감을 탐하는데, 막상 사주면 하루 이틀 즐겁다가 그만이라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다 뭐야. 한 시간도 안 갈 때가 있어. 그의 아내가 거든다. 나는 그 말이 우습다. 아이의 싫증이 재미나서가 아니다. 우리 어렸을 때, 똑같은 얘기 듣지 않았니. 어디 어렸을 때뿐인가. 당장 책상 서랍을 열어보면 철 지난 물건들로..

[유희경의 시:선] 지금이 그때다 - 김용택 [2021-06-30]

지금이 그때다 - 김용택 모든 것은 제때다 해가 그렇고, 달이 그렇고 방금 지나간 바람이, 지금 온 사랑이 그렇다 그럼으로 다 그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살아오면서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진리는 나중의 일이다 운명은 거기 서 있다 지금이다 - 김용택, 지금이 그때다(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에서) 나는 미루기 대장이다. 어떤 일이든 일단 미루고 본다. 이따가 답장해야지. 밥 먹고 처리해야지. 다음 주부터 써야지. 그러곤 잊어버린다.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들이닥쳐 버린 마감에 허둥지둥하면서 다음부턴 절대 이러지 말아야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해야지 다짐하는 것은 또 잊지 않는다. 좋게 봐줄 구석 없이 한심한 노릇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하면 미루는 습관을 고칠 ..

[유희경의 시:선] 멋진 위로 - 이문재 [문화/ 2021-06-23]

[유희경의 시:선] 멋진 위로 - 이문재 [문화/ 2021-06-23] 멋진 위로 - 이문재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 이문재, 오래 만진 슬픔(시집 ‘혼자의 넓이’에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가 묻는다. 요즘 좀 어때? 그를 위해 커피를 내리던 나는 울적해지고 만다. 자주 받는 질문이다. 어떻게 답해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 질문이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는데, 앓는 소리는 오죽할까. ..

[유희경의 시:선] 용서라는 말 - 김승희 [문화/ 2021-06-16]

[유희경의 시:선] 용서라는 말 - 김승희 [문화/ 2021-06-16] 용서라는 말 - 김승희 “요즈음엔 이메일 끝에 ‘진심을 담아 사랑으로’라든가 ‘사랑을 담아 진심으로’라든가 뭐 그런 말을 꼭 붙이는 것 같다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무엇을 남에게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진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려면 일단 주먹을 양산처럼 활짝 펴야 한다" - 김승희, 용서라는 말(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금껏, 구겨버려 미처 편지가 되지 못한 마음은 몇 장이나 될까. 뜬금없이 그런 게 궁금해졌습니다. 누구에게 적으려던, 성에 차지 않은 문장들이었기에 매몰차게 폐기해버렸던 것일까요. 기억이 나지 않네..

[새로나온 시] 남 생각 - 이문재 [문화/ 2021-06-02]

[새로나온 시] 남 생각 - 이문재 [문화/ 2021-06-02] 남 생각 - 이문재 늘 남 생각 처음 길 나선 초보 운전 같은 모기장 안에 모기 한마리 들어온 것 같은 매번 다른 마음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매번 초보 초행 매번 남 생각 ---------------------------------------------- 약력: 1982년 ‘시운동’으로 등단,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혼자의 넓이’ ‘지금 여기가 맨 앞’ 등이 있다.

[새로나온 시] 서천(西天) - 이상국 [문화/ 2021-03-31]

[새로나온 시] 서천(西天) - 이상국 [문화/ 2021-03-31] 서천(西天) - 이상국 초승달 옆에 샛별이 반짝인다 달은 집에 갔다 보름 만에 왔는데 샛별이 몰래 따라갔다 왔다고 한다 지금은 둘 사이가 걸어가면 오분 거리다 오늘은 음력 정월 초아흐렛날 별들은 마당을 씻어놓고 집 밖에 나앉았는데 달이 혼자 집에 갔다 안 올까봐 샛별이 또 지키고 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1976년 ‘심상’으로 등단,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동해별곡’ 등이 있다.

[새로나온 시] 여백 - 정현우 [문화/ 2021-01-20]

[새로나온 시] 여백 - 정현우 [문화/ 2021-01-20] 여백 - 정현우 기억은 나를 뒤집어 놓은 빈집. 머리 위로 철새는 세상을 딛고 여백은 죽거나 사라진다. 눈이 오는 소리를 또각, 또각, 발음했다. 일정하지만 오차가 난무하는 곳, 겨울은 점점 깊어지고 구름은 어디까지 우리의 눈을 가리고 가나. 겨울이 수평 속으로 사라진다. 너는 새를 보면 가렵다고 했다. 그건 새들의 여백일까, 텅 빈 겨울은 밥 짓는 냄새가 난다. 부러진 눈송이는 여백을 지우고 있다. 잘못된 것을 봐도 서글퍼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새가 오듯 네가 온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나..

[새로나온 시] 동자승 - 이돈형 [문화/ 2020-08-26]

[새로나온 시] 동자승 - 이돈형 [문화/ 2020-08-26] 동자승 - 이돈형 붓다가 웃는다 마지못해 동자승이 따라 웃는다 집 마당에 있던 강아지처럼, 신랑각시 할래? 하던 영희 처럼, 골짜기에 흐르던 물처럼, 주지 스님의 빛바랜 승복 처럼 웃는다 품이 커 흘러내린 승복이, 빡빡 민 대갈통에 김 조각처 럼 붙어 있는 검은 점이 부끄러워 동자승은 웃는데 붓다는 찰나에 싯다르타를 본 듯 뒤통수가 가려워 웃 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충남 보령 출신, 2012년 계간 ‘애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