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 원하는 것을 원했던 - 김언 [문화/ 2021-07-14]
원하는 것을 원했던 - 김언
나는 원했다. 무얼 원했고 어떻게 원했고 얼마나 원했는지 다 잊어버렸지만 내가 원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고 원했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원하기 위해 내가 있었고 네가 있었고 누구라도 있었을 테지만
- 김언 ‘나는 원했다’(시집 ‘백지에게’에서)
무섭도록 지친 밤. 혼자 서점에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급작스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아등바등 살고 있지. 뭐긴 뭐야. 돈을 벌려는 거지. 그랬더니 억울해졌다. 고작 요만큼 벌면서. 이만큼이나 에너지를 쏟으면서. 가지고 싶은 것들 참아가며 아껴야 하는 삶이라니. 벌떡 일어나듯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다. ‘다 무슨 소용이람. 가지고 싶은 거 다 사버릴 거야.’ 분명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것저것 검색하고 뒤적거리느라 신이 나서 언제 피곤했었나 싶어졌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냈다. 이쯤 하면 됐다 싶었다. 심호흡을 하고 장바구니를 열어보았다. 이게 뭐야. 한참을 웃었다. 그 속에는 그간 내가 이런 심정일 때마다 집어넣었던 물품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어떤 것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고, 어떤 것은 여전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마음이 싹 달아나 창을 닫았다.
이따금 우리는 원하는 것을 원한다. 그런 원함에 속고 만다. 더러 원하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열심히 사는 것은 비단 소득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억울해서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을 때부터 틀렸다. 아니 억울한 순간부터 틀려먹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기꺼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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