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 익숙함의 소중함 - 마종기 [문화/ 2021-07-07]
익숙함의 소중함 - 마종기
어떤 꽃은
듬직한 나무도 거느리지 못한 채
살아 있는 것만도 기쁜 듯
크기도 색깔도 향기도 별로 없이
맨날 싱겁게 웃으며 흔들거리네.
그런 꽃을 보면 편안해지고 만만해지고
따뜻해지고 느긋해져서
어깨가 다 가벼워지는데
- 마종기, 아내의 꽃(시집 ‘천사의 탄식’에서)
친구가 하소연한다. 아이가 장난감을 탐하는데, 막상 사주면 하루 이틀 즐겁다가 그만이라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다 뭐야. 한 시간도 안 갈 때가 있어. 그의 아내가 거든다.
나는 그 말이 우습다. 아이의 싫증이 재미나서가 아니다. 우리 어렸을 때, 똑같은 얘기 듣지 않았니. 어디 어렸을 때뿐인가. 당장 책상 서랍을 열어보면 철 지난 물건들로 가득하잖아. 친구 부부는 머쓱한지 화제를 돌린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신이 있다면 우리를 보고 혀를 끌끌 차겠구나 싶어서 더는 우습지 않아졌다. 물건뿐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도 이런 문제가 있지. 어쩌면 더 심각하다.
그의 외모에, 이력에 쉽게 이끌리고 그런 조건에 매력이라는 단어를 붙여 아끼고 좋아하지 않나. 그러다가 금방 잊어버리건 그렇지 않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혹여라도 그런 일에 눈 어두워져 놓치고 있는 사이는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오래돼서 가까워서 그러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만 그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인데,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해서 무심해지고 만다. 여기까진 너무 뻔하다. 가까운 존재들의 소중함, 누가 모르겠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 수 있지? 그래.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거야. 어떻게 하면 잊지 않나 고민하는 일!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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