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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막차를 놓치고 - 김경후 [문화/ 2021-07-21]

설지선 2021. 8. 13. 10:11

[유희경의 시:선] 막차를 놓치고 - 김경후 [문화/ 2021-07-21]



 

막차를 놓치고 - 김경후

밤마다 막차다, 아무도 없어도, 나는 몰고 돌아가는, 밤, 막차다, 배차 간격, 없음, 인센티브, 없음, 유급휴가, 없음, 직업, 없음, 내가 탈 차, 없음, 기다릴 차, 없음, 막차에서 막차 사이는, 폐터널이지, 밤마다, 막차다,


- 김경후, ‘원룸 전사’(시집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막차를 놓쳐버린 밤. 더 기다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홀가분해져서, 드문드문 흘러가는 차들을 구경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늦었더라. 저들은 왜 이제야 귀가를 하는 것일까. 글쎄, 열심히 사느라 그랬다기엔 오늘도 갈피를 잃고 보낸 거 아니었나. 종일 헤매느라 막차마저 놓치는 삶이라니. 실은 딴생각에 빠져 버스를 놓친 거였지만 내친김에 조금만 더 앉아 있자. 온몸의 힘을 풀어놓은 참이었다. 청년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내가 앉은 정류장 쪽으로 뛰어오는 거였다. 그는 붉은 글씨로 운행 종료를 알리는 전광판을 보더니, 에이 아깝다 하고 하하 웃었다. 웃고는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거였다. 아마 집까지 걸어보려는 거겠지. 걷다가 힘들면 잠깐 앉아 쉴 각오로. 그러게. 그저 아까운 일일 뿐이다. 못한 일이든, 손해 본 일이든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보다 훨씬 근사한 처세 아닌가. 애써 달렸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 그게 대수인가. 실상 막차는 막차가 아니다. 내일 있을 첫차의 바로 앞차에 불과할 뿐이지. 그제야 나도 아깝다, 하고 웃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벌써 저만치 걸어가 잘 보이지도 않는 청년의 뒷모습을 오래 배웅해주었다.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