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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비교의 사회학 - 권창섭 [문화/ 2021-08-04]

설지선 2021. 8. 15. 13:58

[유희경의 시:선] 비교의 사회학 - 권창섭 [문화/ 2021-08-04]





    비교의 사회학 - 권창섭

    페널티킥을 잘 차는 농구 선수와 3점 슛을 잘 던지는 축구 선수 중 누가 더 필요 없습니까 박사 학위가 없는 시간강사와 강의 제의가 없는 박사 학위자 중 누가 더 쓸모없습니까 구멍이 난 양말과 구멍이 없는 폴라티는 또 어떻습니까


    - 권창섭 ‘비교의 사회학’(시집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손님이 두 권의 책을 계산대로 가지고 왔다. 이번 휴가 중에 읽으려는데 어떤 게 더 좋을지 묻는다. 나는 턱을 괴고 고심하는 척한다. 실은 답이 정해져 있다.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더 좋고 나쁨이란 없다는 것. 물론 보편의 기준이라는 게 있지. 그런데 그 보편의 기준 또한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것 아닌가. 금방 읽기에 ‘좋은’ 것, 오래 시간을 들여 읽기 ‘좋은’ 것, SNS에 뽐내기 ‘좋은’ 것, 읽다 잠들기 ‘좋은’ 것….

비교란 필요한 것이다. 비교해야 선택과 배제가 가능하다. 그래야 더 나아진다. 포화 상태를 면할 수 있다. 이제는 무엇이든 비교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게 비교 가능한 영역인가 싶은 것들도 어김없이 저울 위에 올려 값을 매긴다. 불편하다. 더러 비교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실패하거나 멀리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런 앎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경험상, 손님에게 그 ‘좋음’이란 게 뭘까요 진지하게 되묻는 건 피해야 ‘좋다’. 당장 어리둥절한 표정을 마주할 게 뻔하다.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짐짓 모른 체한다. 둘 중 읽기 수월한 것을 짚는다. 이 책이 더 쉬워요. 금방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농부가 젊은 황희에게 했듯이 속삭인다. 책에도 귀가 있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손님은 반대편을 책을 집는 것이다. 이번 휴가가 좀 길 것 같아서요, 하면서. 나는 그만 얼굴 빨개지고 말았다.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