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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우리' 라는 말 - 김선우 [문화/ 2021-08-11]

설지선 2021. 8. 15. 14:26

[유희경의 시:선] '우리' 라는 말 - 김선우 [문화/ 2021-08-11]





    ‘우리’라는 말 - 김선우


    환하게 어둡게 희게 검게 비릿하게 달콤하게
    몇 번의 얼룩이 겹쳐지며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 할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




    - 김선우, ‘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서점 창립 5주년이라는 미명 아래 7월 한 달 떠들썩하게 보냈다. 각양각색의 응원과 격려가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8월이 됐다. 지난달은 신기루였나 봐. 하루 치 매출액의 초라함에 한숨 짓는 내게 유일한 직원 J가 말했다. “우리 이번 달 어떡하죠.” 행사도 할 수 없고, 별다른 이슈도 없으니 큰일이라는 걱정이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속앓이하던 참인데 그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라니. 직원에겐 제때 월급이면 그만일 수도 있으련만 한 치 망설임 없이 ‘우리’라고 말해주다니. 같이 짊어져 주다니. 서로를 한데 묶는 대명사에 나는 시름을 잊고 용기까지 얻는다.

J와 함께한 시간만도 3년이다. 손바닥만 한 서점에서 적잖이 아웅다웅했구나. 의견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인 적도 있고 내심 삐쳐서 대화 없이 보낸 적도 있었다. 묻지 않아 모르지만 그 역시 그만두고 싶었던 적 많았으리라. 그런데도 함께하는 데는 여러 까닭이 있겠지. 피식 웃음 나오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면 ‘우리’라는, 단순하고 식상한 단어 하나에 이렇게까지 신뢰하지도 감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나만 생각했다는 부끄러움도 찾아와 나는 무심한 척 대꾸했다. “우리가 서점 한두 해 합니까. 걱정 말아요.” 아마 J는 내 허세를 눈치챘을 테지만.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