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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지금이 그때다 - 김용택 [2021-06-30]

설지선 2021. 8. 12. 09:44

 

     

     

    지금이 그때다 - 김용택

    모든 것은

    제때다

    해가 그렇고, 달이 그렇고

    방금 지나간 바람이, 지금 온 사랑이 그렇다

    그럼으로 다 그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살아오면서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진리는 나중의 일이다

    운명은 거기 서 있다

    지금이다

    - 김용택, 지금이 그때다(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에서)

나는 미루기 대장이다. 어떤 일이든 일단 미루고 본다. 이따가 답장해야지. 밥 먹고 처리해야지. 다음 주부터 써야지. 그러곤 잊어버린다.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들이닥쳐 버린 마감에 허둥지둥하면서 다음부턴 절대 이러지 말아야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해야지 다짐하는 것은 또 잊지 않는다. 좋게 봐줄 구석 없이 한심한 노릇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하면 미루는 습관을 고칠 수 있을까. 그랬더니 동료는 하하 웃는다. 세상에 미루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기 싫은 건 다 똑같지. 그런가. 여전히 풀이 죽은 채 나는 주변의 성실한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은 다이어리도 잘 쓰고, 일정도 잊지 않고 제때 맞춰 착착 일을 해내는 것만 같다. 아닐걸요. 동료는 단호하다.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하자는 마음일 거예요. 컵에 물이 반밖에 없는지, 반이나 있는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하잖아요. 하고 대화는 끝이 났다.

생각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당장 답장을 보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대답이 있고, 뜸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망설여야 쓸 수 있는 글이 있겠지. 중요한 것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렇구나. 나는 미루기 대장이 아니라, 까먹기 대장이었어.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