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 용서라는 말 - 김승희 [문화/ 2021-06-16]
용서라는 말 - 김승희
“요즈음엔 이메일 끝에 ‘진심을 담아 사랑으로’라든가
‘사랑을 담아 진심으로’라든가
뭐 그런 말을 꼭 붙이는 것 같다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무엇을 남에게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진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려면 일단 주먹을 양산처럼 활짝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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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구겨버려 미처 편지가 되지 못한 마음은 몇 장이나 될까. 뜬금없이 그런 게 궁금해졌습니다. 누구에게 적으려던, 성에 차지 않은 문장들이었기에 매몰차게 폐기해버렸던 것일까요. 기억이 나지 않네요. 구겨진 편지지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린 모양입니다.
요즘은 편지 쓸 일이 없습니다. 이메일도 있고 문자메시지도 있으니, 생각날 때 즉각 보내면 그만입니다. 무언가 생략된 듯 섭섭하지만 간편하니 그쯤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습니다.
실은, 불편합니다. 너무 간단히 주고받아 생기는 수많은 오해 때문입니다. 숙고하여 공들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불쾌한 감정에 앓고 다치고 맙니다. 그럴 때마다 용서, 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어째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간단한 일이죠. 지금의 방식으로는 좀체 옮겨가지 않는 느린 진심이, 설익은 표현에 담기지 않은 진심이 있을 거라 믿어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음의 주먹을 슬쩍 풀어보는 거지요. 물론 잘 되진 않지만.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지기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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