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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김수호-동아행복시 430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곤드레밥 ― 김지헌(1956∼) [동아/ 2021-04-24]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곤드레밥 ― 김지헌(1956∼) [동아/ 2021-04-24] 곤드레밥 ― 김지헌(1956∼) 봄에 갈무리해놓았던 곤드레나물을 꺼내 해동시킨 후 들기름에 무쳐 밥을 안치고 달래간장에 쓱쓱 한 끼 때운다 강원도 정선 비행기재를 지나 나의 위장을 거친 곤드레는 비로소 흐물흐물해진 제 삭신을 내려놓는다 반찬이 마땅찮을 때 생각나는 곤드레나 톳나물, 아무리 애를 써도 조연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삶도 있다 만나고 돌아섰을 때 두고두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다. 시집도 비슷하다. 덮었을 때 두고두고 생각나는 시가 있다. 사람이나 사람이 낳은 시나 별반 다르지 않다. 나중에도 생각나는 시가 나에게 좋은 시다. 김지헌 시인의 ‘곤드레밥’이 바로 그런 시다...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빈 뜰 ― 이탄(1940∼2010) [동아/ 2021-04-17]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빈 뜰 ― 이탄(1940∼2010) [동아/ 2021-04-17] 빈 뜰 ― 이탄(1940∼2010) 꽃도 이젠 떨어지니 뜰은 사뭇 빈뜰이겠지. 빈뜰에 내려앉는 꽃잎 바람에 날려가고 한뼘 심장이 허허해지면 우린 잘못을 지나 어떤 죄라도 벌하지 말까. 저 빈뜰에 한 그루 꽃이 없어도 여전한 햇빛 바우만이라는 철학자는 오늘날의 우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각자 자신의 보호막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이런 현대인의 특징은 공허함이다. 인터넷 세계는 넓어졌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확장되었지만 접속이 끊기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공허하다. 공허하니까 접속하고, 접속할수록 다시 공허하다. 마실수록 갈증이 커지는 것이 바닷물 마시기와 비슷하다. 그런데 고독은 공허함과는..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꽃 ― 신달자(1943∼ ) [동아/ 2021-04-10]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꽃 ― 신달자(1943∼ ) [동아/ 2021-04-10] 꽃 ― 신달자(1943∼ ) 네 그림자를 밟는 거리쯤에서 오래 너를 바라보고 싶다 팔을 들어 네 속닢께 손이 닿는 그 거리쯤에 오래 오래 서 있으면 거리도 없이 너는 내 마음에 와 닿아 아직 터지지 않는 꽃망울 하나 무량하게 피어 올라 나는 네 앞에서 발이 붙었다. 봄은 꽃으로 시작된다. 개나리는 시작을 알리는 꽃이고, 벚꽃은 폭죽처럼 잠깐 왔다 가는 꽃이다. 다음 타자인 진달래와 철쭉은 4월을 거쳐 5월까지 핀다. 붉은 꽃들은 봄의 끝자락까지 함께할 것이다. 특히 진달래와 철쭉을 사랑하시는 분들께는 요맘때 읽을 책으로 강소천의 장편 동화 ‘진달래와 철쭉’을 추천한다. 동시 잘 쓰시는 분이 동화도 잘 쓰셨다. 주변에서는..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바람 부는 날 ― 민영(1934∼ ) [동아/ 2021-04-03]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바람 부는 날 ― 민영(1934∼ ) [동아/ 2021-04-03] 바람 부는 날 ― 민영(1934∼ ) 나무에 물오르는 것 보며 꽃 핀다 꽃 핀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피고, 가지에 바람부는 것 보며 꽃 진다 꽃 진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졌네. 소용돌이치는 탁류의 세월이여! 이마 위에 흩어진 서리 묻은 머리카락 걷어올리며 걷어올리며 애태우는 이 새벽, 꽃피는 것 애달파라 꽃지는 것 애달파라. 봄이 오면 꽃이 핀다. 꽃이 피면 지게 된다. 맺히고, 피고, 지는 전 과정을 우리는 한 달 안쪽의 짧은 시간에 모조리 볼 수 있다. 꽃의 인생을 보면 아름답기만 한가. 그것은 유의미하고 유정한 일이기도 하다. 꽃의 일생을 통해 우리의 일생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삶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빨래 ― 김혜숙(1937∼ ) [동아/ 2021-03-27]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빨래 ― 김혜숙(1937∼ ) [동아/ 2021-03-27] 빨래 ― 김혜숙(1937∼ ) 빨래로 널려야지 부끄럼 한 점 없는 나는 빨래로 널려야지. 피얼룩 기름때 숨어 살던 눈물 또 서툰 사랑도 이젠 다 떨어버려야지. 다시 살아나야지. 밝은 햇볕 아래 종횡무진 바람 속에 젖은 몸 다 말리고 하얀 나래 퍼득여야지 한 점 부끄러움 없는 하얀 나래 퍼득여야지. 나가 끝나야 오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어쩌겠는가. 맞이할 준비가 늦었으니 서둘러야지. 찾아오시는 봄을 바라보는 마음은 절망보다는 희망 쪽이다. 햇볕이 밝은 탓에 자꾸 그렇게 된다. ‘따가운 봄볕에 다 타버려라. 코로나는 모두 모두 소독되어 버려라.’ 이런 희망마저 갖게 된다. 그런데 햇볕에 소독되고 싶은 건 이 시대의..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이생 ― 하재연(1975∼ ) [동아/ 2021-03-20]-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이생 ― 하재연(1975∼ ) [동아/ 2021-03-20] 이생 ― 하재연(1975∼ ) 엄마가 나 되고 내가 엄마 되면 그 자장가 불러줄게 엄마가 한 번도 안 불러준 엄마가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자장가 불러줄게 내가 엄마 되고 엄마가 나 되면 예쁜 엄마 도시락 싸 시 지으러 가는 백일장에 구름처럼 흰 레이스 원피스 며칠 전날 밤부터 머리맡에 걸어둘게 나는 엄마 되고 엄마는 나 되어서 둥실 아무래도 선물은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것이기 쉽다. 다른 사람 주려고 선물을 사러 간다고 치자. 뭘 사야 할까. 대개는 내 입맛에 맛있었던 것,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떠올린다. 나한테 이게 좋았으니, 당신에게도 좋으리라. 이런 생각이 이기적이라고 탓할 수는 없다. 내게 좋은 것을 너..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소금 달― 정현우(1986∼ ) [동아/ 2021-03-13]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소금 달― 정현우(1986∼ ) [동아/ 2021-03-13] 소금 달 ― 정현우(1986∼ ) 잠든 엄마의 입안은 폭설을 삼킨 밤하늘, 사람이 그 작은 단지에 담길 수 있다니 엄마는 길게 한번 울었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꺼내지 못했다. 눈물을 소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슬플 때의 맛을 알 수 있을 텐데 둥둥 뜬 반달 모양의 뭇국만 으깨 먹었다. 오늘은 간을 조절할 수 없는 일요일. 김치는 일종의 솔 푸드다. 이 집 김치와 저 집 김치는 맛이 다르고, 이 고장 김치와 저 고장 김치는 재료도 다르다. 김치라는 말은 하나지만, 각자의 영혼에 박혀 있는 김치의 맛과 형태, 색과 냄새는 제각기 다르다. 나에게는 나만의 인생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김치가 있다...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꽃범벅 ― 서상영(1957∼ ) [동아/ 2021-03-06]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꽃범벅 ― 서상영(1957∼ ) [동아/ 2021-03-06] 꽃범벅 ― 서상영(1957∼ ) 꽃 베던 아해가 키 높은 목련꽃 예닐곱 장 갖다가 민들레꽃 제비꽃 하얀 냉이꽃 한 바구니 모아다가 물 촉촉 묻혀서 울긋불긋 비벼서 꽃범벅, 둑에서 앓고 있는 백우(白牛)한테 내미니 독한 꽃내 눈 따가워 고개를 젓고 그 맛 좋은 칡순 때깔 나는 안들미 물오른 참쑥 키 크다란 미나리를 덩겅덩겅 뜯어서 파란 꽃떡 만들어서 쏘옥쏘옥 내미니 소가 히이-우서서 받아먹어서 한 시루 두 시루 잘도 받아먹어서 아하, 햇살은 혓바닥이 무뎌질 만큼 따스웁더라 아해는 신기해서 눈물 나게 슬퍼서 하도 하늘 보며 초록웃음 웃고파서 붉게 피는 소가 못내 안타까워서 속털도 빗겨주고 눈도 닦어주고 얼굴만 하염없이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안부 ― 윤진화(1974∼ ) [동아/ 2021-02-27]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안부 ― 윤진화(1974∼ ) [동아/ 2021-02-27] 안부 ― 윤진화(1974∼ )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시는 왜 좋은가.’ 이 질문을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꽃 이름을 물었네 ― 길상호(1973∼) [동아/ 2021-02-20]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꽃 이름을 물었네 ― 길상호(1973∼) [동아/ 2021-02-20] 꽃 이름을 물었네 ― 길상호(1973∼) 이건 무슨 꽃이야? 꽃 이름을 물으면 엄마는 내 손바닥에 구멍을 파고 꽃씨를 하나씩 묻어 주었네 봄맞이꽃, 달개비, 고마리, 각시붓꽃, 쑥부쟁이 그러나 계절이 몇 번씩 지나고 나도 손에선 꽃 한 송이 피지 않았네 지문을 다 갈아엎고 싶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다시 꽃 이름을 물어오네 그제야 다 시든 꽃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 이름이 궁금했네 엄마는 무슨 꽃이야? 그녀는 젖은 눈동자 하나를 또 나의 손에 꼭 쥐어주었네 예전에는 가정이 출발점이라고 했다. 가정이 모여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모여서 세계가 된다고. 그러니까 가정은 씨앗 같은 거였다. 그걸 통해 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