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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自尊感 - 김수호 (1940~ )

자존감自尊感 - 김수호 (1940~ ) 숨기는 곳을 사람도 다 아는데 도토리를 감추는 다람쥐 그 잎사귀 밑, 나무 구멍 고집하는 건 그래야 다람쥐이기 때문이듯 글자판 없이 휑한 시계가 기계라기보다 시계이고 백사장에 완전 발가벗은 나체족도 짐승이라기보다 사람이듯 이웃이 훤히 눈치채고 있더라도 말못할 사연 보듬고 사는 이 결코 제 입으로 터뜨리지 못하는 건 그래야 사람이기 때문일 터 (170221)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여름 가고 가을 오듯 - 박재삼(1933∼1997) [동아/ 2023-09-02]

여름 가고 가을 오듯 - 박재삼(1933∼1997) 여름 가고 가을 오듯 해가 지고 달이 솟더니, 땀을 뿌리고 오곡을 거두듯이 햇볕 시달림을 당하고 별빛 보석을 줍더니, 아, 사랑이여 귀중한 울음을 바치고 이제는 바꿀 수 없는 노래를 찾는가. 시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 유명하기 때문에 박재삼은 가을을 대표하는 시인처럼 보인다. 쓸쓸하니 고적한 말투 때문에 더욱 가을을 상징하는 시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시집을 읽다 보면 박재삼은 가을이 아니라 모든 자연의 시인임을 알게 된다. 자연에 대한 감각이 유독 섬세해서 스쳐 부는 바람도 느낄 줄 알았고 나뭇잎의 물살도 볼 줄 알았다. 자연을 사랑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닮아 간 시인. 계절에 몸을 맡겨 시를 자아냈던, 자연과 시로 화답한 시인이 바로 박재삼이..

[유희경의 시:선] 그럼에도 비우지 못하는 것 [문화/ 2023-08-30]

비운다는 것 - 김명인 비운다는 것은 철없던 슬하를 떠나보내고 그리움도 습관도 내려놓는 것, 젊은 날엔 한 해가 멀다 하고 옮겨 사느라 짐꾼처럼 이력이 붙었는데 지금은 갈 곳 있어도 허둥대니 쌓아온 적폐 내다 버릴 일이 걱정인가 (김명인 시집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그럼에도 비우지 못하는 것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는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가득 책 짐을 찍어놓은 사진이 덧붙어 있다. 절로 한숨을 짓게 된다. 읽고 쓰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책이란 숙명이지만 ‘이사’ 앞에서는 골칫거리이기도 한 것이다. 한낱 종이로 만든 것이 어쩜 그리 무거운지, 견적을 내러 온 사람의 한숨과 함께 ‘따블’이 되는 이사 비용은 책과 사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이다. 집에 놀러 온 조카가 천진하게 물은 적이 있다. ..

대한민국 왼쪽 날개는 진보 아니다···극좌주사파 날개짓이다 [조선/ 2023-08-30]

대한민국 왼쪽 날개는 진보 아니다···극좌주사파 날개짓이다 [조선/ 2023-08-30] 보수·진보 양날개론'에 대한 윤대통령의 통찰, 정확하다 [한국 좌파의 전체주의적 민낯] 통렬하게 지적했다 ■ '보수·진보 양날개론'에 대한 통찰 “새는 날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힘을 합쳐 그 방향으로 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투쟁·혁명 같은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출범 1주년 성과 보고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바른 [보수·진보 양 날개] 짓은 어떤 것이냐와 관련해,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논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 말이 너무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기회에 철저히 따지고 넘어가야 할 이슈다. 세계..

나도 상이용사 - 김수호 (1940~ )

나도 상이용사 - 김수호 (1940~ ) 4강전에서 기권패한 테니스 영웅처럼 내 발바닥에도 물집으로 생긴 상처가 있소 전방 훈련사단의 기동훈련 때 농든 발바닥을 대충 수술한 후유증이요 대대 의무실에서 마취는커녕 토막사 한가운데 기둥에 붙잡아 세우더니 알코올 램프에 그을은 매스로 돼지 족발 다루듯 쓱 그었소, 으악! 비명 터지며 황토 바닥에 털석, 수술 자리에 다섯개 거즈 심지를 박은 채 졸개 등에 업혀 다니며 치료 받았소 그 발바닥의 엄지와 중지 사이 상처 둘레로 머리띠처럼 자라나는 평생 한몸 된 발바닥 구덕살 그 의붓 살붙이는 손톱깍기로 뜯어내오 수학여행 중에 다친 것도 돈벌이나 취미로 운동하다 얻은 것도 데모하다 터진 것도 아니고 신성한 국방 의무 수행하다 생긴 상처가 여든 넘도록 괴롭힐 줄이야, 그..

[최영미의 어떤 시] 만강홍(滿江紅), 분노한 머리칼 투구를 쳐들어 - 악비(岳飛 1103~1142) [조선/ 2023-08-28]

만강홍(滿江紅), 분노한 머리칼 투구를 쳐들어 - 악비(岳飛 1103~1142) 분노한 머리칼 투구를 쳐들어 난간에 기대어 서니 세찬 비가 그쳤구나. 눈을 들어 둘러보다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 지름은 사나이 품은 뜻 뜨거움이라(…) 팔천 리 길, 구름과 달을 벗하리라. 세월 가벼이 보내지 마라 청년의 머리 희어지면 공허한 회한에 사무치리니 정강년(靖康年)의 치욕 아직도 씻지 못하여(…) 전차 휘몰아 적진을 돌파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옛 산하 수복하여 황제께 알현하리니. (류인 옮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남송(南宋)의 장군, 악비가 지은 시. 용맹스러운 군인의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분노한 머리칼 투구를” 보자 내 머리칼이 쭈뼛 섰다. 무인(武人)이라면 기세가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정강..

매실주를 담그며 - 김수호 (1940~

매실주를 담그며 - 김수호 (1940~ ) 경조사에 주고받는 부조금처럼 빈말로 인사 받았다고 전화로 인사 받았다고 그만큼만 되갚는 세상인심일지언정, 나 홀로 밤길 더듬거릴 때 말없이 손이라도 잡아 끌면서 잠시 등 대고 쉬게 해 준 그 믿음의 온기를 마음속에 되지피며, 고급 술에야 어찌 비길까마는 알알이 감사를 곰삭힌 정성의 진국을 짬짬이 권하고플 뿐이지. 새삼 술이 그리워서가 아니라네. (181003)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연년생 - 박준(1983∼ ) [동아/ 2023-08-26]

연년생 - 박준(1983∼ )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8월 늦장마가 지겹다면 박준의 시집을 추천한다. 5년 전에 나온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읽다 보면 장마의 쓰임새를 이해할지도 모른다. 장마라고 해도 당신과 함께 볼 수 있다면 싫지 않다. 장마여도 당신과 함께 겪는다면 감사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소중한 ‘당신’이 있다. 아무리 나 자신만 중요한 현대사회라고 해도 우리는 때로 나 때문이 아니라 소중한 당신 때문에 살아간다. 그러니까 죽지 말자. 제발 죽이지 말자. 같은 시집에 이 시가 실려 있..

악연惡緣의 보상 - 김수호 (1940~ )

악연惡緣의 보상 - 김수호 (1940~ ) 열네 살의 소년과 열두 살의 소녀는 제주북초교의 선후배로 양가 어른들이 맺어 준 정혼자 고보에 진학한 소년 고녀로 뒤따라 간 소녀 4학년 때 중학생은 축구선수이자 성진회에 이어 독서회의 간부 학생항일운동 주동자로 1년 6월 징역형 2학년 때 여중생은 약혼자 옥바라지하다 퇴학 도쿄의 미션 스쿨에서 순정의 면학 출소 후 결혼하여 고향 제주에 은신한 캥거루족 부부 13년 차에 맞은 광복에 새 삶 개척과 자녀 교육을 위해 선택한 해방 당년의 첫무대 오, 그곳이 다시 광주光州! 부부의 첫사랑을 꽃피운 에덴동산이었으되 학업줄을 끊은 비정의 도시 그 뒤안에 누인 두 자식의 주검 6.25가 까부순 사업 기반 남은 건 아비의 해방 후 졸업장 한 장뿐 자식들 꿈마저 박살난 정녕 ..

상처 치유법 - 김수호 (1940~ )

상처 치유법 - 김수호 (1940~ ) 허멀 딱지를 떼어 내지 마라 자꾸 도지며 커지니까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내력 있는 치료법이 아니냐 그래도 차도가 없을 때는 상태에 따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신약도 개발되고 의술도 업그레이드 되니까 마음의 상처라고 다를까 나라의 흠집도 마찬가지 나라 세운 지 백 년이 지났냐 이백 년이 흘렀냐 스스로 못 지킨 역사는 부끄러워하며 분발할 일이지 그런 전철 밟지 않도록 무슨 자랑꺼리냐 내놓고 들쑤시게 동족상잔의 싸움판을 벌여 나라를 잿더미로 만든 북한 공산집단의 만행을 극복하고 이 버젓한 나라 세운 걸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희의 조부모와 부모 양대가 피땀으로 일군 전설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호의호식에 누릴 것 다 누렸으면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