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 정지용(1902~?)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외래어는 하나도 쓰지 않고, 한자어도 없이 순수한 우리말로만 쓴 아름답고 재미난 동시. ‘도롱이’ 대신 우산을 쓰며 우리가 잃어버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한다. “하늘이 시커머니 어째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하던, 귀신처럼 정확했던 그분들의 일기예보가 그립다.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정지용은 서구의 모더니즘을 받아들여 참신한 이미지와 정제된 언어가 돋보이는 시를 썼다. 일제강점기에 이토록 향토색이 진한 서정시를 쓴 시인이 가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정지용은 6·25 전쟁이 터진 뒤 피란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있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