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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수호-창작학습시/김수호♡미발표시 - 2

배웅하며 할 말은 - 김수호 (1940~ )

설지선 2023. 4. 7. 09:24

 

 

배웅하며 할 말은 - 김수호 (1940~ )

 

 

텃세의 꽃방석에 앉아

그 옛날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던  

쬐끄만 고향 섬

맘만 먹으면 단숨에 갈아엎고 말 뱃심

젊은 날 촉망받던

꽤 잘 나간다 싶던 자네가 

흙으로 돌아가던 날

들에도 눈발이 재 같이 날렸다네

 

근대화가 시동 걸린 시절

만만한 패거리 끌고 주유천하하며

동문들의 옷자락을 타고

넓은 오지랖에 번듯한 명찰은 못 달았어도

모두가 내 것인 양

머리는 하늘 뚫고 두 발은 구름에 두둥실

헤엄치기 몇 십년인가

무슨 구름인지도 상관없이

 

어느 날 불치의 날벼락에

힘 한번 못 써보고

추락한 곳이 변두리의 납골당

그 좁은 항아리 속에서

반세기를 더 묵어야 한다니

누가 들춰보는지 흉보는지 탓하는지도

모르는 세상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누군들 별 수 있겠는가마는

결국 도리 없이 그 길을 가게 되겠지

먼저 간 벗도 늘어나고,

거기선  매일 만나겠구만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영원히 나눔세

황망慌忙 중에 배웅하며

할 말은 이뿐, 아니! 한마디 추가

빨리 오란 재촉은 사절이네

 

 

(11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