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하며 할 말은 - 김수호 (1940~ )
텃세의 꽃방석에 앉아
그 옛날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던
쬐끄만 고향 섬
맘만 먹으면 단숨에 갈아엎고 말 뱃심
젊은 날 촉망받던
꽤 잘 나간다 싶던 자네가
흙으로 돌아가던 날
들에도 눈발이 재 같이 날렸다네
근대화가 시동 걸린 시절
만만한 패거리 끌고 주유천하하며
동문들의 옷자락을 타고
넓은 오지랖에 번듯한 명찰은 못 달았어도
모두가 내 것인 양
머리는 하늘 뚫고 두 발은 구름에 두둥실
헤엄치기 몇 십년인가
무슨 구름인지도 상관없이
어느 날 불치의 날벼락에
힘 한번 못 써보고
추락한 곳이 변두리의 납골당
그 좁은 항아리 속에서
반세기를 더 묵어야 한다니
누가 들춰보는지 흉보는지 탓하는지도
모르는 세상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누군들 별 수 있겠는가마는
결국 도리 없이 그 길을 가게 되겠지
먼저 간 벗도 늘어나고,
거기선 매일 만나겠구만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영원히 나눔세
황망慌忙 중에 배웅하며
할 말은 이뿐, 아니! 한마디 추가
빨리 오란 재촉은 사절이네
(1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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