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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 - 오은 [문화/ 2020-03-30]

설지선 2022. 3. 30. 16:47

[유희경의 시:선] 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 - 오은 [문화/ 2020-03-30]





    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 - 오은

    혼자 있을 때 꿈이었던 것이
    함께 있을 때 희망이 되었다
    꿈은 만남을 꿈꾸고
    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
    희망찬 꿈과 꿈같은 희망


    - 오은 ‘107번째 연작 시’
    (시집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48개국 108명의 시인이 쓴 팬데믹 시대의 연시’)


서점 영업이 끝나고 재활용품을 내다 놓는 길에 옆 가게 사장님을 만났다. 늘 웃는 사람인데, 어쩐지 수심이 가득해 보인다. 무슨 일 있느냐는 물음에 먼저 한숨부터 내쉰다. 매상이 영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그런 수준이 아니라, 바닥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먼 곳을 본다. 거기 무어라도 있는 것처럼.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나 역시 뭘 어째야 하나 방법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색해져서 돌아서려는데, 그가 까만 USB 메모리 장치를 내민다. 죄송한데, 출력 좀 부탁해도 될까요. 마카롱을 팔아보려고 새 메뉴판을 만들었는데 프린터가 없어서요, 하고 멋쩍게 웃는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잠시 지워진다. 그럼요.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고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그가 추가한 것이 ‘희망’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희망’이라니. 요 몇 해, 참 잔인한 단어가 됐다. 당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대책 없는 위로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다음을 도모하는 사람의 힘이다. 나는 그런 노력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고 싶은 거였다. 출력된 용지 위에 알록달록한 마카롱 사진들이 참 달콤해 보여서, 그것이 우리의 미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며칠 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옆 가게 사장님이었다. 어쩐지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가 불쑥 내민 손에는 연보랏빛 마카롱이 들려 있다. 하나 드셔 보시라고요. 그러곤 냉큼 나서는 그의 등 뒤에 대고 고맙습니다, 크게 인사를 했다. ‘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 분명.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