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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글쓰기의 어려움 - 임수현 [문화/ 2022-03-16]

설지선 2022. 3. 16. 18:48

[유희경의 시:선] 글쓰기의 어려움 - 임수현 [문화/ 2022-03-16]





글쓰기의 어려움 


어제도 오늘도
한 줄도 쓰지 못한 잎사귀는 아무렇게 낡아 가요
초심이란 조바심과 같아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부를 때 쓰는 말일까요

(…)

슬픔은 잘 적으면 잎맥처럼 반짝인다 문장을 보고 오늘은 어디든 가 보겠다 했지만



- 임수현 ‘어디로 갈지 몰라 달팽이에게 길을 물었어요' (시집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직업을 밝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도리 없이 긴장하곤 한다. 시인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나, 남다른 것도 사실이다. 내 대답을 들으면 그렇군요! 하고 감탄한 다음, 무언가 떨어뜨린 사람처럼 다음 말을 찾느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시에 관한 경험이나 생각을 풀어놓는 사람도 있다. 학창 시절 기억에 남은 시, 알고 지내는 시인 이름, 시인의 생활고까지 대화의 소재는 많고 전형적이다.

어떤 이들은 부러워한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시겠네요, 하는 식이다. 책도 많이 ‘읽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시인이요 작가겠으나, 그렇게 대답했다간 종일 부연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네, 잘 씁니다, 하기는 어려우니 나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렇다. 노력한다. 특히 쓰기에 관해서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의 시인 수는 어림잡아도 아주 많을 텐데, ‘아주 많은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어찌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매번 막막하다. 나름 읽고 쓰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시는 그리고 글은 늘 어렵고 쓰기 괴롭다. 이제, 술술 적히는 것까진 아니어도 서너 줄쯤은 거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번 처음으로 돌아간다. 머릿속은 앞에 놓인 백지처럼 새하얗고, 손은 난생처음 글을 쓰는 사람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남우세스러워 어디서도 말 못할 비밀이다. 어디 나만 그럴까. 전 세계 모든 문필가는 같은 경험 중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