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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사이 - 권누리 [문화/ 2022-02-16]

설지선 2022. 2. 16. 14:05

[유희경의 시:선] 사이 - 권누리 [문화/ 2022-02-16]





사이 - 권누리


우리는 시외의 천문대로 향했다 천문대에는 사람이 많았고 비치된 좌석에 사람들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대해
별과 별 사이의 거리에 대해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완전히 놓친 것에 대해

말했지만, 우리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 권누리, ‘프린트’(시집 ‘한여름 손잡기’)




요즘 햄버거 가게나 커피숍에는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키오스크’라는 전자단말기가 설치돼 있다. 키오스크(kiosk)란 본래 이집트 등 지중해 인근 국가들에 있던, 휴게 정자(亭子) 역할의 고대 건축물 명칭인데, 시간이 흘러 음료 스낵을 파는 가판 상점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정자와 가판대의 유사성은 이해할 만하나, 그저 계산만 해주는 무뚝뚝한 전자기기와는 어떤 닮은 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 가볍게 한 끼 때우려고 들어간 가게에서 쩔쩔매고 있던 노인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다. 버튼 몇 개 대신 누르는 거야 일도 아니었지만, 정작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너무 무식해서 미안해요”라는 그의 말 한마디였다. 어째서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하는 것이 ‘무식’이며 ‘미안’할 일인가. 그런 사실은 노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끔, 이 불친절한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끔 사회가 강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려운 것은 노인뿐이 아니다. 키가 작은 어린이도, 신체가 남과 다른 장애인도 이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말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타인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는 별과 별만큼 아득하게 떨어져 있는 사이다. 이를 인정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경제적 장치’의 형태나 방식을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함께 삶’에 대한 고민을 더 담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편리가 아닌 불편에 불과하겠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