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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사랑의 결 - 조온윤 [문화/ 2022-03-02]

설지선 2022. 3. 2. 16:48

[유희경의 시:선] 사랑의 결 - 조온윤 [문화/ 2022-03-02]





    사랑의 결 - 조온윤


    오랫동안
    우리는 길고 긴 복도 같은 일인칭을 걷고 있었다
    눈이 어두운 우리는 불빛만을 향해 걸어서
    누군가 옆에 함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눈이 어두워서 밤과 낮을 구별할 줄 모르는 심해어처럼
    우리는 꿈과 꿈 아닌 것을 구분할 줄 몰랐다

    - 조온윤 ‘유리행성’ (시집 ‘햇볕 쬐기’)




사람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어쩜 이렇게 제각각일까. 같은 삶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틈만 나면 넋을 놓고 오가거나 머물러 있는 이들을 훔쳐보곤 한다. 각기 다른 만큼, 닮아가는 것도 많다. 유행하는 양식이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아이템들이 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하나같이 네모난 기계를 들여다보거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요즘 눈에 띄는 것은 무선 이어폰이다. 생긴 것이 콩나물 같다고 놀려대더니만 어느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죄 착용하고 있다. 바깥과 절연한, 그야말로 일인칭 시대다. 나도 다르지 않다. 이어폰으로 부족해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다닌다. 내가 필요할 때만 외부를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편리를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며칠 전 일이다. 예의 헤드폰을 푹 뒤집어쓰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옷소매를 누가 당겼다.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서둘러 헤드폰을 벗어보았다. 들고 있는 무와 양파가 든 봉지가 너무 무거워서 그러니 건너편까지만 들어달라고 부탁하고 계신 거였다. 못 들은 척하고 있는 듯 보였겠구나. 얼굴이 다 화끈거려서, 꽤 멀리까지 들어드렸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일인칭 삶이 삶의 태도가 되면 안 되겠다 생각도 했다. 우리 옆엔 사람이 있다. 눈과 소리를 거두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택이 아니라 조건으로, 그것도 필수적 조건으로 옆에는 사람이 있다. 불편과 편리의 논리는 여기서는 작동이 돼선 안 된다. 이어폰을, 헤드폰을 벗는 마음으로 마음을 쏟는 것. 그것이 삶이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