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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선물 - 박상수 [문화/ 2022-02-09]

설지선 2022. 2. 10. 09:02

[유희경의 시:선] 선물 - 박상수 [문화/ 2022-02-09]


 


선물 - 박상수

걸어도 걸어도 무엇도 보이지 않는 나날이 계속된다면, 갖고 싶어 햇살이 오래 들어오는 2층 창가, 담쟁이덩굴이 흔들리고 윤기 어린 나무 탁자 위로는 바스켓 화분이랑 핸드메이드 유리 동물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는 곳. 어른대는 빛 속에서, 내게로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구나


- 박상수, ‘작은 선물’(시집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생일을 맞이한 친구에게 뭘 갖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집, 당첨된 복권, 외제차. 해줄 수 없는 목록을 대겠지. 그러곤, 축하로 충분하다고 어물쩍 넘어가려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정색을 하면서, 내 마음대로 고를 거라고 으름장을 놓게 되는 것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선물을 두고 우리는 같은 패턴의 대화를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친구는 평화를 받고 싶다고 대답했다. “따뜻한 햇볕 아래서 조금의 걱정도 없이 책을 읽다가 자고, 배고프면 원하는 요리를 만들어 먹고. 저녁이 되면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을 갖는 그런 평화. 당장의 걱정도, 내일의 불안도 없는 태평한 시간 말이야.” 나는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런 평화가 필요하지. 나도 받고 싶다. 하지만 나도 친구도 안다. 평화란 선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재산이 많으면 될까. 사회적인 존경을 받게 되면 가능할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여유롭고 넉넉해질 거라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사실 우리는 너무 지쳐 있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갈구하느라 따뜻한 햇볕도, 그 아래서의 낮잠도 자지 못하고 아등바등 걱정에 불안을 보태며 소진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까진 알겠다. 누구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겠지.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는걸. 새삼 시무룩해지는 마음을 달래며 친구에게 찻잔을 보냈다. 평화로운 삶은 어림없고 차 한 잔만큼의 평화로운 시간만이라도 갖게 되길 바라 보았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