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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어머니의 제주 [문화/ 2022-04-06]

설지선 2022. 4. 6. 19:00

[유희경의 시;선] 어머니의 제주 [문화/ 2022-04-06]



 

 

어머니의 제주 


사과 한 쪽을 베어 먹다 뱉은 사과 씨 하나를 너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내 장난에 너는 환호하며 주먹을 꼭 쥐고 외쳤다.
“심었다"

네가 들어 올린 그날의 작은 땅.
사과나무의 가장 어린 뿌리는 땅속 제일 깊은 곳에 있기 마련이다.
잔뿌리 같은 너의 손금들이 땅속처럼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작고 캄캄한 주먹 속에서 움트고



- 김중일 ‘내일 지구에 비가 오고 멸망하여도 한 그루의-딸과 함께’
(시집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올 설부터 매일매일, 어머니께 1만 원씩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는 픽- 하고 웃으셨는데, ‘며칠이나 지키나 보자’ 하고 생각하셨나 보다. 다음 날부터 약속이 실행되었다. 세 달쯤 지나자, 익숙해지신 모양이다. 어쩌다 깜빡한 아침이면 여지없이 독촉성의 안부 문자를 보내시곤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어머니가 제주도에 가셨다. ‘한 달 살기’를 해보시겠다는 거였다. 친구분들이 꾀어도 버티고 버티다가 직전이 되어서야 마음을 바꾸신 모양이다. 집안일 등이 마음에 걸리셨던 거겠지. 그러나 막상 도착하면 좋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매일 송금의 답장으로 제주의 날씨, 어디에 다녀오셨고 무얼 보았는지를 전해주는 메시지 속 어머니는 그저 즐거우신 중이다.

그중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어머니가 무시로, 순서 없이 보내오는 사진이다. 바다 위 불쑥 솟은 기암, 잔뜩 핀 벚꽃, 아름다운 구름의 하늘 모습에서 어머니의 제주를 상상한다. 그것은 나무처럼 자라난다. 거센 바닷바람 끝 온건함과 등을 어루만지는 볕의 따끈함, 그 너머 시름없이 펼쳐진 어머니의 스무날. 거기서 세 달 치의 1만 원 몽땅 쓰고 오셨으면 좋겠다. 맛있는 것 먹고, 좋은 풍경 보면서. 그러나 아마, 차곡차곡 모아두고 계시겠지.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