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 기쁨과 슬픔 [문화/ 2022-04-20]
그렇군요 많이 놀라고 속상하셨겠어요 저는 당신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슬픔을 꼭 안아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때로는 슬픔이 우리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요. 우리, 우리의 슬픔을 믿기로 해요.
- 김누누 ‘건너편의 슬픔’(시집 ‘일요일은 쉽니다’)
- 김누누 ‘건너편의 슬픔’(시집 ‘일요일은 쉽니다’)
얼굴 까먹겠다고 연락한 후배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와 근황을 나누고 난 다음 그는 조심스레 묻는다. 요즘 SNS에 올라오는 글마다 슬픔이 짙다고. 괜찮은 거냐고. 그랬나. 나는 되짚어 생각해보다가, 아니라고 별일 없다고. 봄이라도 타는 모양이라고, 하하 웃었다. 그러면서, 사실 뭐 기쁠 일도 없다고 덧붙였지만 후배는, 슬프지 않다는 것에 안도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네요. 걱정했어요. 나는 그의 안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슬픔이 그리 걱정할 만한 상태만은 아니니까. 그러나 말하지는 않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게 될 테니까.
기쁨과 슬픔. 참으로 선명하게 분리되는 대립항. 둘을 놓고 어떤 것을 택할래, 질문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들, 제아무리 부정적인 사람일지라도, 슬픔을 고를 수 있을까. 그리하여 기쁨은 옳은 것이 되며 슬픔은 옳지 못한 것이 된다. 하나 이와 같은 이분법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한다. 기쁨과 슬픔은 현상이며, 둘 다 우리의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기쁘겠다 마음먹어 기뻐진다면, 슬프지 않겠다 작정해 슬픔이 사라진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기쁨과 슬픔은 늘 있다. 인정하고 이해해야 그다음을 예비할 수 있다.
그럴듯하게 적어놨으나, 사실은 뻔한 이야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한 것을 잊고 만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봄에는 슬픈 일이 있어도 괜찮겠다. 물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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