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 귀엽고 아름다운 오해 [문화/ 2022-05-04]
나는 볼 수 없는 것
당신은 보고 있을 거예요
그쪽에서 꽃이 피고 있다고 하셨죠
못 본 꽃을
본
당신이 보여주세요
모르는 암흑이라서
당신 손을 잡아요 당신을 통해서
끝이라고 쓰고 꽃이라 읽을 수 있어요
- 황혜경 ‘See’(시집 ‘겨를의 미들’)
당신은 보고 있을 거예요
그쪽에서 꽃이 피고 있다고 하셨죠
못 본 꽃을
본
당신이 보여주세요
모르는 암흑이라서
당신 손을 잡아요 당신을 통해서
끝이라고 쓰고 꽃이라 읽을 수 있어요
- 황혜경 ‘See’(시집 ‘겨를의 미들’)
선배가 아내의 전화를 받은 것은 퇴근하려 채비를 하던 참이랬다. “오늘 늦지 않지? 올 때 꽃 좀 사다 줄래?” 꽃이라고? 의아해진 선배는 재차 물어보았다. 선배의 아내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응.” 이상했지만, 더 물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기념일을 놓친 건가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알았다고 대답을 하면서 서둘러 달력을 뒤져본 선배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부쩍 떨어진 기억력을 탓하며 선배는, 회사 앞 꽃집에 들러 한 다발 봄꽃을 샀다. 영문을 모르겠고 잊고 있는 일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좋더라고 선배는 말했다. “꽃다발을 들고 길을 걸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더라고.” 선배는 그때 기분이 되살아난 듯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었대요?”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 말이야.” 선배는 아껴둔 것을 꺼내놓는 사람처럼 길게 말을 끌다가, “꽃이 아니라 꿀이었어.” 그러곤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미술 재료로 꿀이 쓰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아내의 부탁을 꽃으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꿀이 꽃이 되다니. 너무 시 같지 않니. 이거 시에 써봐."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시인이라는 이유로, 귀한 이야기를 물어다 주는 제비 같은 사람이 참 많다. 나는 흥부가 된 기분으로 선배의 이야기를 시에 적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그 시는 쓰였으니까. 꽃다발을 든 선배의 만면에, 뜻밖의 꽃을 받아들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선배 아내의 난감함에. 그 귀엽고 아름다운 오해가 이미 시를 쓴 것이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시인이라는 이유로, 귀한 이야기를 물어다 주는 제비 같은 사람이 참 많다. 나는 흥부가 된 기분으로 선배의 이야기를 시에 적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그 시는 쓰였으니까. 꽃다발을 든 선배의 만면에, 뜻밖의 꽃을 받아들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선배 아내의 난감함에. 그 귀엽고 아름다운 오해가 이미 시를 쓴 것이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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