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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설지선-가황자료실/남인수★가요일생

[스크랩] 남인수는 영원한 가요황제이다/남인영(남인수팬클럽 회장, 가수)

설지선 2008. 3. 14. 09:42

남인수는 영원한 가요황제이다/ 남인영(남인수팬글럽회장, 가수)

 

* 아래 글은 남인영 팬클럽회장이 항간의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남인수님이 친일파로 등재한 것에  대하여 반박한 글로 남인수팬클럽에서 옮겨온 것입니다...설지선

 

마땅히 친일청산은 해야 합니다. 이는 역사적 필연이라 만인이 공감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에 명단에 오른 인사들은 대체로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한 것 같아 저 개인적으로는 찬성하는 쪽입니다. 다만, 오직 한사람 남인수가 오른 것만큼은 부당하게 여겨집니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명단에 수록한 것이 공정하다 할지라도, 남인수의 처경과 공적도 병기했어야만 마땅할 것이라 사료되는 바입니다.

이른바 친일가요로 지칭한 "그대와 나","혈서지원", 그리고 "이천오백만 감격"만으로, 여태까지의 가요사와 만인이 알고 있던 <온겨레의 연인 남인수>라는 가수를 일시에 매장하려는 시도는 불순한 동기가 있지 않은지 의구심마저 들게 합니다. 위에 열거한 노래들만이 남인수의 모든 노래가 아닙니다. 무려 일천여 곡의 주옥같은 노래들 중의 '옥의 티'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저 노래들은 남인수가 부르고 싶어 부른 것이 아닙니다. 일제의 끊임 없는 감시와 협박에 시달렸던 남인수는 그대로 무너질수는 없다는 마음에 일시적으로 고개를 숙였던 것입니다. 사실 유년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남인수는 청년기에 들어 서면서, 당시로써는 불치의 병이었던 폐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 남인수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했던 것은 인지상정이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오늘날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잣대로 재단함은 소의 뿔을 자르려다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라 여겨짐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점검 또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며, 우선의 목적달성을 위해 근시안적인 눈으로 사안을 평가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타고난 성대로 일시에 가요계의 왕자로 등극했던 남인수를 일제는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저들은 남인수를 이용하려 했으니, 자기네들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가수생활을 못하게 함은 말할 것도 없고, 징용이나 군대의 총알받이로 보낸다고 협박을 일삼았으니, 그 악랄한 자들의 갖은 위협은 가수 남인수로 하여금, 분루를 삼키면서도 어쩔수 없이 무릎을 꿇게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말씀은, 이른바 친일가요(일명;군국가요. 훼절가요)가 있다지만, 그보다 훨씬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른 노래가 많음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같은 일제 강점기때 부른 노래들만 꼽아 봐도 데뷔곡이며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한 <눈물의 해협>부터, 징용에 끌려 가는 부모형제와의 이별의 아픔을 읊은 <울며 헤진 부산항>에, 정신대에 차출된 우리 처자들의 고뇌와 슬픔을 노래한 <서귀포 칠십리>, 그리고 일제를 은유적으로 꾸짖음과 아울러 자신의 약함을 반성하며 부른 곡인 <인생출발>이 있지요. 노랫말에 '운명의 쇠사슬을 어이 합니까'라는 부분이 있는데,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른 후 바로 일경에게 끌려 가 모진 고초를 당했음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저 사계절의 하나인 봄노래로 알고 있는 <낙화유수>만 해도 "봄"은 바로 "나라의 광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운다고 옛사랑이'로 시작되는 <애수의 소야곡>은 남녀간의 사랑만을 표현했던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뜻있는 분들은 '운다고 옛사랑이'를 '울기만 한다고 식민지가 되기 이전의 독립국가 조선으로 되돌아 갈수 있겠는가만'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토록 노랫말 한구절 한구절마다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위에 말씀드린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많이 불리워지는 노래이니 말할 것도 없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 중엔 또 얼마나 많은 애국적인 노래들이 있는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독립투사들의 고난과 절절한 심경을 노래한 <망향의 사나이>와 <북국의 외로운 손>이 있으며, 일제가 독려했던 "만주에의 이주정책"을 꼬집은 <울리는 만주선>이 있습니다.

해방 후를 볼것 같으면, 가장 먼저 민족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가거라 삼팔선>이 있으며, 남북이 서로 싸우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흘겨본 삼팔선>을 불렀고, 새나라를 건설하자며 <희망 삼천리>를 열창했지요. 이른바 '여순사건'이 났을 땐 왜놈들이 이 땅을 점거했을 때는 가만 있더니, 이제 와서 왜 동족끼리 싸우느냐며 질타한 <여수야화>가 있습니다. 젊은이의 굳센 기상과 상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해같은 마음>을 노래했고, 달도 하나이고 해도 하나이듯 나라와 민족은 오직 하나라며 <달도 하나 해도 하나>를 피를 토하며 불렀습니다. 역시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휴전선 엘레지>를 불렀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최초로 노래한 가수도 바로 남인수인데, 그 노래가 <향수>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노래해서 50년대의 최고최대 히트곡이 된 <이별의 부산 정거장>도 있군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4월혁명이 일어 났던 해엔 학생들의 정의지심에 박수를 보내며 <사월의 깃발>을 학생합창단과 함께 부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남인수는 시대상황을 가장 심도있게, 그리고 절절한 목소리로 남긴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뛰어난 가수이자, 우리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명가객인 것입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꾸짖고,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되리라 믿습니다. 알량한 애국심을 내세우며, 자신들만이 가장 민족을 사랑한다는 착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족을 달자면 저는 좌도 우도 아니며 보수를 할때는 보수가 되고, 진보가 필요할땐 언제나 개혁의 선두에 서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나쁘게 보자면 '기회주의자' 내지 '회색분자'가 될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중용지도를 으뜸의 덕목으로 신봉하는 주의입니다. 다시 한번 충언을 드리자면,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보는 경우는 없었으면 합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출처 : 설지선의 옛노래방
글쓴이 : 설지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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