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 선생은 이산(離散) 가족이다".
(그분의 "애국적인 노래'를 이해하기 위하여)/sanha(팬클럽 회원)
일전에 잠시 게시판에 선생의 가족(형제 부분)사항에 대한
글을 간단하게 올렸다가 내심 생소하고 껄끄러운 내용으로
받아 들여질 것 같아 삭제한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의 노래가 오묘하고 신비한 만큼이나
가족 문제도 철저하게 베일에 쌓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간략하게 나마 재차 언급을 해 볼까 합니다
선생의 문중이 어디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제 거의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미 모든 분들께서 잘 알고 계시다 시피
북쪽에 선생의 조카가 살고 있다는 것인데(이미 남쪽에 출판된 책을 통해서
보면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누구도
증언할 분들이 없기 때문에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한권의 북녘 방문기(지나번 대구 모임에서 이미 보신 분들도 있습니다 만)를
살펴보면 이 사실에 대해 간접적으로 나마
자료를 얻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서 선생이 이산가족이며 현재까지 선생의 유일한 육성을 통해서
흘러 나오는 "항주 군관학교, 독립운동, 밀사"등등의 말들과,
선생의 애국적인 수많은 노래들("눈물의 해협"에서 부터 "4월의 깃발"까지)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다음은 약 15년전에 출판된 책속에서 선생의 친형과 형수
조카 최삼숙((노동자 출신의 인민가수(이 부분은 남인수 선생과 다를바 없습)
공훈배우,김일성 표창장,김정일 표창장 휩습.
민요가수인 강운경 씨에게 사사,1988년 당시 녹음 2760곡 공연 2600회,
사진을 보면 남인수 선생의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습,
"최삼숙'으로 검색하면 노래들을수 있습))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는 내용 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선생의 형 "최창도"는 경남 진주에서 교편 생활을 하였다.
선생의 형수는 경북 대구에서 산파 생활을 하였고
대구에서 고녀?에 다니다가 학비가 없어 일본으로 고학을 갔다.
그리고 정치 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었던
애국적인 어머니 였다.
이 두분이 1948년에 월북하였다.
이후 선생의 형은 이북에서 최초로 젖산유를 창안하여 만들어 내었다.
선생의 조카들은 세분(2남 1녀)이었고 그중 한분이 6.25때 전사 하였다.>>
나머진 조카 최삼숙에 대한 성장과정과 인품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간단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제 나름대로
추측이 아닌 확신 그리고 신념으로 승화시켜온 결과가
있다면 "선생의 삶 전반에 걸쳐 형님이나 형수의 자취들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쩌면 형수가 투옥된 감방에 면회도 갔을 것이다"
특히 "두 분이 월북 했을때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그리고 민중들의 애환을 노래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상상이라고 말씀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고민하고 면밀하게 검토 해보면서
저는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그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함에 추호도 변함이 없습니다
때문에 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선생에 대해
"친일주구"라고 몰아 칠 때도 안면몰수 하고
당당하게 반론을 펼치기도 했던 것입니다.
"선생은 일본 군국주의 자들을 "위한" 노래 몇 곡 불렀지만
민중을 "상대로"하여서는 부른적이 없었다고 말입니다."
선생의 애국적인 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의
방문기에 나타난 내용을 인식한 바탕위에 서지 않으면
어렵다고 봅니다.(오로지 혼자만의 생각 일지라도)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애국적(민족적)인 노래에
쓰며 들어 있는 유별난? 사상과 감정을 이해 하기에 턱 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그런 노래를 불렀다?
이 자체로서는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그때 그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고향산천"그 노래 선생 자신이 직접 작곡을 부탁했다"
저는 선생이 비슷한 유형의 많은 곡들을 직접 작사자나
작곡자에게 요구 했다고 확신 합니다.>
어려운 시기 일수록 남인수 선생의 참다운 팬들이 그리워 집니다.
*자료; 가요114 남인수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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