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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사람답게 살 궁리 - 김현 [문화/ 2021-10-27]

설지선 2021. 10. 27. 15:11

[유희경의 시:선] 사람답게 살 궁리 - 김현 [문화/ 2021-10-27]




    사람답게 살 궁리 - 김현


    사람이라는 건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일할 땐 일하고
    놀 때 놀게 하소서
    아픔 없이 데려가소서

    믿음이라는 건

    의자에 빚진 생각만큼 의자의 그림자를 보고
    오래 말하지 않아도 무섭지 않고
    친구들과 작은 운동장에 모여 일광욕하고

    - 김현, ‘오늘의 시’(시집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상향 조정에 따라 밀렸던 사업들이 연말을 목전에 두고 진행되는 까닭이다. 평소의 두 배, 체감상으로는 서너 배 일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마음 같아선 못하겠다, 드러눕고 싶다. 하지만 신뢰는 간유리보다 깨지기 쉬운 것이 아닌가. 되도록 잠을 줄이고 약속 같은 것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안성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석 달 전쯤, 그곳의 한 서점에서 시 낭독을 해달라는 청이 왔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냉큼 수락을 해버렸다. 가는 데만 세 시간. 지하철에서 고속버스로, 다시 택시로 갈아타는 동안 내내 후회했다. 이 시간이면 서류 작업 서너 개는 끝냈겠다 싶었다. 모처럼의 외출을, 창밖의 가을 풍경을 만끽하긴커녕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 앞에서 시를 읽고 내 생각을 말해주고 하는 동안 참 좋았나 보다. 행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늘 참 좋았지’, 되새기고 있는 거였다. 사람이라면,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졸리면 자면서 살아야 하는데, 일에 치여 허둥지둥 사는 건지 죽는 건지,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도 모르고 지냈구나. 그러면 어째야 하나. 글쎄, 당장 답은 없다. 다만 이번의 바쁨이 지나면, 그러고 나면 욕심부리지 말고 그저 사람답게 살 궁리를 해야겠다 다짐만은 잊지 않았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