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 울고 싶은 마음 - 박소란 [문화/ 2021-10-13]
울고 싶은 마음 - 박소란
그러나 울지 않는 마음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버스에 앉아 울지 않는 마음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
흐려진 간판들을 접어 꾹꾹 눌러 담는 마음
마음은 남은 서랍이 없겠다
없겠다
없는 마음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버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
나는 다만 기다리는 것
- 박소란 ‘울고 싶은 마음’(시집 ‘있다’)
어릴 적 별명이 찔찔이였다. 툭하면 운다고. 톡 건드리면 눈물을 흘린다고 찔찔이. 쟤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눈물이 헤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를 흘겨보곤 했다. 실은 아버지의 별명이 찔찔이였다지. 휴가를 뺏겼다고 군대에서도 울었다던 사람.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나는 훌쩍이면서 아버지도 찔찔이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스무 해가 다 돼간다. 나는 내 어릴 적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었고 이젠 울지 않는다. 사실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에도 총량이 있는 것일까. 어릴 적 너무 울어서 더는 울지 못하게 돼버린 것일까. 슬픈 일이 있어도 콧등이 시큰거리고 그뿐이다. 다들 우는데 혼자 멀쩡해서 곤혹스러웠던 적도 몇 번 있었다.
며칠 전엔 우는 사람을 봤다. 중년의 사내였는데 엉망으로 취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기대앉아서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굽은 어깨에 손을 대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로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서툰 마음을 감추느라 냉큼 버스에 올라탔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나도 울고 싶어졌다.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사내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는 이 없는 곳에서 펑펑 울고 속이 후련해졌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언젠가 엉엉, 크게 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부끄러우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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