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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모두 안전하게 천천히 - 이시영 [문화/ 2021-11-03]

설지선 2021. 11. 3. 14:32

[유희경의 시:선] 모두 안전하게 천천히 - 이시영 [문화/ 2021-11-03]





모두 안전하게 천천히 - 이시영

구로디지털역점 무료 배달 홈서비스 소속 오토바이 한 대가 한신오피스텔 입구에 다급히 내팽개쳐져 있다. 방금 사람이 앉았던 따뜻한 등받이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아들아, 안전하게 다녀와라!”


- 이시영 "아들아, 안전하게”(시집 ‘나비가 돌아왔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은 로터리에 면해 있다. 구(區)의 경계인 데다가, 거주지역과 상업지역이 모여 있고 인근에 대형 병원까지 있어 종일 소란이 가라앉질 않는다.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 성미 마른 자동차 경적음, 아이들이 터뜨리는 와르르한 웃음 등등. 조용할 겨를이 없다. 싫은 것만은 아니다. 도심에 있으면서 소음을 피할 길은 없는 데다 아무튼 다들 살아간다는 소식이 아닌가 생각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좋아할 구석은 하나도 없는 소음도 있다. 오토바이가 내달릴 때의 거센 엔진 소리, 바퀴가 바닥에 마찰하며 내는 파열음에는 미간이 절로 좁혀지고 만다. 좋아하는 이 하나 없는 저런 소리를 내며 뽐내는 폼이 영 마뜩잖다. 그런 소리가 근래 부쩍 늘었다. 치명적인 유행병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배달로 연명하는 까닭이리라. 요즘은 어디에나 오토바이가 있고 아슬아슬 위험한 일을 겪거나, 본 것 또한 한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크고 작은 사고도 많은 모양이다. 나의 싫음과 불만이 설득력을 얻어가는구나 싶다가, 급한 문서를 퀵서비스를 통해 받게 됐다. 보낸 지 한참이라는데 문서는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면 금방 닿는다 하고. 처리해줘야 할 시간은 다 돼가고. 초조해졌다가 화가 났다가 그러던 중 문서가 도착했다. 아니 이런 게 어딨어요 하고 따지려는데, 헬멧 너머 땀으로 번들번들한 기사님의 얼굴이 엿보이는 거였다. 아이고 이런. 순간 정신이 들었다. 곡예하듯 위태위태 그들이 달리는 까닭은 내 독촉, 나의 급함에 있는 거였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