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루바이(Rubái) 71 - 오마르 하이얌 [조선/ 2021.06.07]
루바이(Rubái) 71
움직이는 손가락은 쓴다, 썼다.
네 아무리 기도를 바치고 재주를 부린들,
되돌아 한 줄도 지울 수 없지.
눈물 흘린들 한 단어도 씻어낼 수 없지
루바이 96
아, 장미꽃 시들며 봄날은 사라지고
젊음의 향기 짙은 책장도 닫혀야하네
나뭇가지 위에서 노래하던 나이팅게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날아갔는지!
-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ám 1048∼1131)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Rubái·페르시아어로 4행시)를 어떻게 해설할지, 손가락이 떨린다. 루바이 71번은 쓰는 행위 자체를 소재로 삼은 특이한 시다. 한번 쓴 뒤에 지울 수 없는 글, 한번 지나가면 지울 수 없는 인생. 눈물을 흘려봤자 한 시간도 씻어버릴 수 없다. ‘쓴다-썼다’로 이어지는 시제의 변화도 흥미롭다. 어떻게 천 년 전에 이런 모던한 시를? 페르시아의 천문학자 시인 오마르 하이얌에게 서양인들은 열광했다. 연설 중에 “Moving Finger writes and having writ”를 인용하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생각난다.
루바이 96은 가볍고 나른하다. “젊음의 향기 짙은 책장” 표현이 멋지다. 4행 “어디로 날아갔는지” 뒤에 “아는 이 있나”를 행이 길어져 생략했다. 어느 날 내 시야에서 사라진 새를 나도 시로 썼다. “새 한 마리가 나를 부른다. 이 외로운 행성의 어딘가에서 또 만나자고” (‘파리의 지붕 밑’)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
Rubái 71
The Moving Finger writes; and, having writ,
Moves on: nor all thy Piety nor Wit
Shall lure it back to cancel half a Line,
Nor all thy Tears wash out a Word of it.
Rubái 96
Yet Ah, that Spring should vanish with the Rose!
That Youth’s sweet-scented manuscript should close!
The Nightingale that in the branches sang,
Ah whence, and whither flown again, who know!
- translated by Edward FitzGerald(1809~1883)
※피츠제럴드(Edward FitzGerald)의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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