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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명랑笑說] '가난' 갖고 말장난 하지 말라 [조선/ 2017.02.11]

설지선 2017. 2. 11. 11:25

[남정욱의 명랑笑說] '가난' 갖고 말장난 하지 말라 [조선/ 2017.02.11]

돈이 삶의 전부 아니지만 선택의 스펙트럼 넓혀줘
1970년대쯤 죽은 단어로 정치인, 대중 현혹 말아야


'가난' 갖고 말장난 하지 말라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돈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돈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교만이고 위선이기 쉽다. 특히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성장 가능성과 의욕을 스스로 눌러버린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돈이 선택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휴가 때 하와이를 갈까 유럽을 갈까 고민하는 사람과 방콕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시라(방콕은 방에 콕 처박히는…). 사람은 역사에, 인생에 그리고 돈에 겸손해야 한다. 돈을 존중하지 않고(존경이 아니다) 무시할 때 인생은 초라하고 비참해진다. 돈은 그 사람이 가진 자유의 총량이다.

가난에 대해서도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다. "가난은 다만 좀 불편한 것이다." 대체 뭔 소리냐. 가난은 불편이 아니라 불행이다. 무책임하고 간악한 이런 말에 현혹되었다가는 인생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민정 시찰을 나갔을 때다. 사장 하나가 초가집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목가적이지 않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매섭게 그 말을 받았다. "살아봤습니까?"

가난이라는 단어는 사어(死語)다. 대략 1970년대 중반쯤 죽었다. 운이 좋아 가난의 끝물만 살짝 겪었다. 아까시나무 꽃을 따먹는 채집 경제와 개구리 뒷다리를 간식으로 하는 수렵 경제의 혼합이었다. 어른들은 불만에 찬 꼬마들을 타박했다. "이놈들아, 우리는 나무껍질도 벗겨 먹었어." 꼬마들은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일을 결코 실감할 수 없다. 해서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난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형마트 시식 코너에서 고기를 공짜로 주는 나라다. 살을 빼겠다고 전 국민이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나라다. 그들에게 배고픔과 가난은 그저 관념일 뿐이다.

문재인의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의 부제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이다. 그는 공정한 세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답이 '가난하지만 더불어 사는 공동체, 배고프더라도 함께 먹는 세상'이란다. 소생보다 나이가 많으니 궁핍의 체험도 더 깊을 것이다. 그런데 가난과 배고픔이라니. 그게 새로운 나라라니. 얼핏 고상하게 들리지만 실체는 오로지 고통일 뿐인 그 말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겹치는 게 안희정 지사의 몇 해 전 인터뷰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가는 길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전역부터 청사까지 가는 길은 서울의 20년 전이다. 논산에 가면 눈물이 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하루 세 대 오는 버스를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노인들을 보면 대전의 20년 전이다. 서울과 논산은 40년 차다." 적어도 안희정은 '살림'을 안다. 그가 그토록 미워했던 독재자의 딸 이 대전을 방문했을 때 안희정은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정치인의 가식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도정(道政)을 하면서 배웠을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는 없지만 그 떡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를. 그 독재자가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시계가 거꾸로 가는 남자와 '뭣이 중헌디'를 아는 남자의 대결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