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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박정희 없는 保守 - 양상훈 주필 [조선/ 2017.06.01]

설지선 2017. 6. 1. 20:25

[양상훈 칼럼] 박정희 없는 保守 - 양상훈 주필 [조선/ 2017.06.01]


근대화 혁명가 탄생 100년… 딸 추락 탓 폄훼당하지만 그 위업 누가 부인하나
그러나 이제 한국 보수는 박정희를 계승하되 넘어서는 새 길 가야 한다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올해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루한 나라에 근대화 혁명을 일으켜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의 토대를 쌓은 혁명가의 탄생 100년은 기억하는 사람도, 기념하는 세력도 없이 지나갈 것 같다.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됐으나 탄핵당하고 수갑을 찬 채 구치소와 법원을 오가며 세인들의 혀를 차게 하고 있다. 박정희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기회 삼아 딸과 함께 아버지까지 끌어내리려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다. 딸이 대통령일 때 많은 사람이 '저러다 아버지의 위업에 먹칠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지금 진보 정치인, 지식인들은 박정희를 폐기 처분해야 할 구(舊)시대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이 굶어 죽던 보릿고개에서 대한민국을 구출한 대통령이 폐기해야 할 구시대 유물로 바뀌는 것은 정말 옳고 바른 일인가. 일부에서는 박정희가 없었어도 지금의 경제 발전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헤엄을 못 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놓았더니 "당신 없었어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큰소리치는 꼴이다. 우리끼리 싸움엔 귀신이고 외적과 싸움엔 등신이었던 우리가, 그래서 나라까지 잃어버리고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던 우리가, 비합리적 인습 덩어리였던 우리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면서 앞만 보고 갔던 지도자 없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양심이 없는 소리다.

박정희의 수출입국 전략, 외자 도입 전략,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은 셀 수 없는 난관과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욕먹으며 밀고 나가 세계 역사에 남을 기적을 이뤘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진창에 빠진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 마침내 국민 모두가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자각하게 만들었다. 세계 강국들에 둘러싸인 우리가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DNA다. 그 민족 운명 개척의 리더십이 단군 이래 최고의 전성기에 오르는 도약대를 만들었다. 비전과 혜안, 리더십은 박정희에게 헌정해야 할 단어다.

미국 역사는 워싱턴과 제퍼슨·링컨의 역사이기도 하다. 결코 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대통령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박정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누가 부정할 수 있나. 정주영과 이병철, 박태준 회장이 세계 기업사의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업인·철강인인 것과 마찬가지다. 덩샤오핑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으로 국민 수천만명을 죽인 마오쩌둥에 대해 '공(功)7 과(過)3'이라고 했다. 후반기의 독재로 국민에게 상처를 준 박정희 역시 '공7 과3'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한 나라는 위인을 일부러라도 만든다. 워싱턴·제퍼슨·링컨의 흠을 잡자면 책이 몇 권은 나올 것이다. 우리는 있는 위인도 못 깎아내려 안달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일군 기적 방정식은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 아버지 시대의 수직적 리더십을 다시 들고나온 딸의 결과가 분명히 상징하는 것이 있다. 박정희는 세계 제조업 시대의 총아였으나 4차 산업혁명으로 들어가는 지금 세상 자체가 달라졌다. 시장 만능주의, 대기업 편중, 경제 양극화도 한계에 왔다. 보수적 지식인, 관료 출신들도 박정희 시대의 경제·사회 모델을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작년 총선과 지난 대선으로 한국 사회의 보수(保守)는 무너졌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이제 한국의 보수는 '박정희 없는 보수' '박정희를 계승하되 뛰어넘는 보수'라는 길을 가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일 뿐만 아니라 생각도 못 해본 길이다. 그만큼 한국 보수에 새겨진 박정희의 흔적이 넓고도 깊다. 태극기 시위대의 절규는 '박정희 없는 보수'에 대한 위기감, 상실감과 저항감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성공은 경이롭다. 구질서 유지를 목표로 하는 19세기 정당이 21세기까지 존속해 지금 집권까지 하고 있다. 서울대 박지향 교수는 이에 대해 '이름만 같은 보수당일 뿐 과거에 비해 지도부의 출신 배경, 사상 및 정책은 크게 바뀌었다. 앉아서 행운을 누린 게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했다. 전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시대적 요구를 수용했다'고 했다. 영국 보수당은 변화를 거부했던 19세기 중반엔 30년 가까이 선거에서 연패하는 절망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박정희를 넘어서는 보수'를 모색하는 정당과 세력은 아직은 미약하다. 그래도 이들이 우리 정치에서 자유와 평등, 성장과 복지의 조화라는 지난한 과제를 보수주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있다. '박정희를 잇되 넘어서는 보수'의 길을 찾지 않으면 한국 보수는 영국 보수당이 겪었던 암흑시대를 맞을 수 있다.

서거 몇 달 전인 1979년 여름 박정희는 포항제철의 박태준을 청와대로 불러 '하야'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잠시 말을 멈춘 뒤 "왠지 나는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라고 했다 한다(박태준 평전·이대환 지음). '운명 개척자 박정희'는 영원히 이어가야 하지만 개발 시대의 문화와 체제는 '여기까지'여야 한다. 박정희도 지하에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