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와 할배 자세히보기

0-0 응접실-세상이야기/김수호★세상풍정

[만물상] '국민의 뜻' - 신정록 논설위원 [조선/ 170617]

설지선 2017. 6. 17. 08:58

[만물상] '국민의 뜻' - 신정록 논설위원 [조선/ 170617]


대선 한 달쯤 전인 지난 3월 말 문재인 캠프에서 핵심들 비공개회의가 열렸다.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계속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주제였다. 촛불민심과 국가대청소론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안철수 후보에게 턱밑까지 쫓기던 때였다. 10여명 참석자 중 단 2명만 '국민'을 믿고 적폐청산 구호를 밀고 가자고 했다 한다. 문재인 후보와 전병헌 현 정무수석으로 알려진다.

▶문 대통령은 '국민'을 좋아한다. 대선 출정식도 '국민과 함께'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대신했다. 전국 각지, 세계 각지의 우리 국민을 등장시켜 '문재인과 함께 출마하는 것'이라 했다. 5년 전 대선 때 캠프 이름은 수많은 민초(民草)를 뜻하는 '담쟁이 캠프'였고 상징 이미지도 담쟁이넝쿨이 얽히고설켜 담장을 기어오르는 모습이었다. 2015년 말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을 때 "민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정치하는 사람이 국민이나 민심을 존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경우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2015년 여름 민주당 대표 시절 이완구 총리 후보 인준이 문제가 됐을 때 "여야 공동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했다. 물론 당시 여론 분위기가 인준에 긍정적이었다면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론조사 만능론이라면 정당이나 국회도 필요없다.

▶그제 문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 임명 강행 의지를 밝히면서 "국민의 뜻"이라고 했다. 지난 12일 한 여론조사에서 임명 '찬성' 62%, '반대' 30%가 나온 것을 뜻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사흘 전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장관 자질이 된다'는 32%에 그쳤고, '안 된다'가 39%였다. 여론조사는 설문에 따라 결과가 바뀐다. 강 후보자 찬성이 높게 나온 조사는 누가 봐도 여론조사의 본령을 이탈한 설문 내용이었다. 하지만 위정자들에게 불리한 조사 결과는 보이지 않고 유리한 결과만 보이는 법이다. 여론조사를 금과옥조로 여긴다면 60% 안팎이나 되는 '핵무장론', 50%를 넘는 사드 찬성론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이라크 파병은 하지 말았어야 했고, 한·미 FTA도 맺지 말았어야 했 다.

▶여론은 여름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70~80%로 시작한 대통령 지지율은 10~20%에서 끝난다. 어떤 경우엔 여론이 국익과 충돌할 수도 있다. 여론 정치는 그래서 위험하다. 16일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가 사퇴했다. 드러난 사실이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여론의 바다는 수치가 아니다. '국민' 앞에 오만한 권력은 오래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