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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70년대 통치가 가니 70년대 운동권이 오나 [조선/ 160126]

설지선 2017. 1. 26. 14:32

[양상훈 칼럼] 70년대 통치가 가니 70년대 운동권이 오나 [조선/ 160126]

70년대식 박근혜 통치 뒤 70년대 운동권 문재인 대기… 안 바뀐 40년 전 사고방식
글로벌 경쟁 중인 나라에 친일·독재 청산 중요하다니… 정말 비극인가 희극인가

양상훈 논설주간
▲ 양상훈 논설주간
박근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분은 "대통령은 1970년대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최씨 일가와 40년 된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70년대 청와대 생활에서 배우고 느끼고 만났던 것이 인생 전부였다는 뜻이다. 청와대에서 나온 뒤 18년을 사회와 단절된 공백기로 보내자 그의 나이가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버렸다. 사람들과 접촉을 꺼리는 폐쇄적 성격도 지난 40년간 우리 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유독 나이 많은 사람들을 중용한 것도 1970년대 눈으로 사람을 고른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도 비상대책위원장이라고 박 대통령이 처음 낙점한 사람은 80대였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개인 생활도 70년대식 그대로 했다. 북이 5차 핵실험을 하자 첫 지시가 "불순분자를 감시하라"였던 것도 몸은 2017년에 있지만 생각은 1970년대에 머물고 있는 그를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끝내 불통이었던 것 역시 국민과 동떨어져 홀로 과거 속에서 살았던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이제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이 설사 기각되더라도 그의 70년대식 통치는 사실상 끝났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가장 유력하다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역시 197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다. 파출소 피하니 경찰서라는 식이다. 문 전 대표의 언행과 그를 다룬 책을 보니 70년대 운동권 학생 딱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의 말은 오랜 옛날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생각해보니 중국 문화혁명을 미화한 이영희가 1970년대에 냈던 '전환시대의 논리'와 같은 책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람이 어떻게 40년 전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도 진화하지 않을 수 있는지 신기한 느낌마저 든다.

문 전 대표는 아직도 세상을 선(善)과 악(惡) 이분법으로 본다. 요즘은 웬만한 사람들도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 친일 세력, 군부 독재 세력이 있어서 이들이 권력을 다 잡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해방된 지 70여 년인데 어디에 친일파가 있으며 나약한 샐러리맨 집단이 된 군부가 무슨 독재 세력인가.

문 전 대표는 친일 독재 세력이 반공(反共), 산업화 세력, 보수 정당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반공은 북의 김씨 왕조를 반대하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이를 친일 세력이 둔갑한 것이라고 본다. 친일파가 산업화 세력이 됐다는 것은 재벌을 비난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재벌이 친일파라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두고 '독점'이나 '일자리'를 비판하지 않고 '친일파가 둔갑한 것'이라니 할 말이 없다.

친일 후손도 보수 정당보다는 민주당 쪽에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친일 청산을 외치던 민주당 의원들의 아버지가 실은 일제(日帝) 앞잡이로 밝혀져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든 게 10여 년 전이다. 문 전 대표가 조상 묘까지 파헤치겠다면 민주당 의원들부터 먼저 해보기 바란다. 대통령이 민주 절차로 탄핵되는 나라에서 무슨 '독재' '군부' 운운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세상이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으로 구성돼 있고 자신은 착한 편 주인공이라는 줄거리는 종이가 낡아 다 해진 권선징악 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일 것이다. 그게 지금 세계와 무역으로 먹고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40년 만에 다시 등장해 판을 벌이게 됐다.

그는 책에서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공격에는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완전히 깔아뭉갠다는 뜻이다.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다른 의견을 다 무시한 채 '친일파' '독재 군부 세력'과 투쟁을 선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허공에 주먹질한다는 게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나라에 비극인가, 희극인가.

70년대 운동권은 80년대 주사파와는 달랐다. 순수하게 자유 민주 회복을 원했던 사람들이었다. 민주화가 된 뒤에는 우리 경제 발전을 이끈 중심 세대가 됐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공산권을 포함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고 할 때 앞 줄에서 뛴 세대다. 70년대의 낡고 고루한 나라를 G20 일원으로 만들었다. 이 기적의 과정을 통해 70년대 대학가에서 돌을 던지던 학생들은 글로벌 시민으로 변모하고 성장했 다. 만약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바로 그런 세대의 대표 주자여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기술과 중국의 추격 사이에 낀 나라, 4차 산업혁명의 막차를 놓칠 위기에 있는 나라, 저출산 고령화에 병들어 가는 나라, 일본식 장기 침체에 이미 한 발을 들여놓은 나라, 북한 김씨 왕조의 마지막 발악 앞에 놓인 나라와 그 국민 앞에 활로를 열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