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위해서도 사람 죽였는데 내나라 위해서라면 - 을지공사 [정치-일베/ 2017.02.03]
내가 첫 외국여행 간곳이 월남이다. 지금처럼 뱅기타고 골프백 메고 간게 아니라 열흘넘게 배타고 멀미에 토악질 하면서 갔다. 골프백 대신에 군장에 따블백 싸가지고 갔다. 골프채 대신 M1소총들고 말이다. 멀미를 얼마나 했던지 나중엔 똥물까지 올라오고 똥물도 다 토하니 헛구역질만 나오더라.
세어보지 않았다. 몇 명이나 죽였는지 전투중엔 내가 어느놈을 쏴죽였는지 모른다. 그냥 갈겨대니까.
그렇지만 수색중에 적과 붙으면 내가 죽인놈은 분명히 안다. 반드시 보고 쏴 죽이니까.
처음 베트공 한놈 쏴죽이고 오니까 내가 더 무섭더라. 기분도 더럽고 잘했다고 중대장이 칭찬해주고
전우들이 짱이었다고 해주지만 그래도 사람을 죽였다는 기분은 그다음 전투때 까지 젖같았다
1년 3개월간 월남에서 전투했다. 처음엔 존나 무섭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사람이란게 참 묘하더라.
한 서너번 전투를 치르고 나니까 할만 하더라(나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적도 제대로 보이고 정조준도 되더라
두번 베트공하고 얼굴보고 맞붙었는데 안죽고 나는 살았다. 물론 개네들이 나한테 죽었다.
솔까말 그때는 내가 왜 싸우는지 몰랐다. 그냥 싸우는거다 싸우라니까 싸우고 내가 안죽려고 싸웠다.
더럽게 가난했던 집안에서 그래도 부모님이 공부는 해야한다시며 키워주셔서 대학을 다녔다. 당시에는 서울에 대학이래야 열손가락도 안됐다. 남대문시장가서 미군 스모르 작업복 사서 까만색 염색해서 입고 워커 한컬레 사서 목아지 짤라서 신고다니며 졸업때 까지 입고신고 다녔다. 제대하고 취직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전쟁터에서도 안죽었는데 겁날게 없더라. 씨발 설마 일하다 죽겠냐 싶더라. 토요일 일요일도 없고 야근은 밥먹듯 했다. 집에서 자는날 보다 회사에서 자는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그땐 신났다.
너희들 아냐? "잘 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 "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동사무소에서 틀어주던 이 노래기억 하냐? 아 씨발! 얼마나 힘들고 못살고 못먹었으면 한이 맺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온국민이 노래를 불렀겠냐?
첫 봉급부터 마지막 봉급까지 봉급봉투를 전부 모아두었는데 지금보면 정말 눈물난다. 1975년 5월 21일 이 날이 내 첫 월급날이었다. 누런 봉투에 모나미153 볼펜으로 명세서 써있더라 기본급 95,000원! 마지막 월급명세서 2010년 10월21일 기본급 5,740,000원.
존나 추운 겨울날 바닷가 허허 벌판에 공장 짓는다고 가설사무소 만들어 놓고 일하는데 여직원이 훌쩍거리며 울더라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발이 너무시려서워서 운다고 하길래 차타고 한시간가서 읍내 재래시장에서 내돈으로 덧버선 백컬레 사다가 전직원에게 나누어 주어주고 나도 신고 깔깔거렸던 기억이 난다. 모두 열심히 일했던 그친구들 지금은 전부 할아버지되고 할머니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물과 피와 땀으로 이룬 이 나라다!
나는 싸울것이다! 남의나라에서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도 싸웠는데 내나라에서 왜 싸워야하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는 지금 망설일 이유가 없다. 파렴치하고 비겁하고, 추잡한 인간들에게 이 나라를 내 줄수는 없다. 절대로 "나라는 악한 자들에 의해 망하는게 아니라 악을 묵묵히 지켜보는 자들에게 망한다"
[출처] 남의 나라 위해서도 사람 죽였는데 내나라 위해서라면
[링크] http://www.ilbe.com/93920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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