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場은 악마가 아니다… 민주주의·正義와 어긋나지 않아" / 이선민 선임기자 (조선/ 160204)
['시장의 철학' 펴낸 윤평중 교수]
"시장 왜곡 막으려면 公正 필요, 복지·분배는 미래성장의 밑거름
北도 시장 확산돼야 통일 가능… 장마당 경제 확대에 주목해야"
현대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시장 경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옹호하고, 한국 사회가 이를 보다 발전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중진 철학자인 윤평중(60) 한신대 교수가 자본주의의 핵심인 시장과 시장 경제를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정리한 '시장의 철학'(나남)을 펴냈다. 경제·경영학의 학문적 대상으로 여겨지는 시장에 대한 연구서를 철학자가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 교수는 머리말에서 "연구에 착수하며 아마존을 검색했더니 '시장의 철학(Philosophy of Market)'이란 단어가 들어간 학술 단행본이 한 권도 없었다"고 밝혔다. '시장'과 '철학'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학계에서도 이질적이거나 충돌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주류 경제·경영학이 과학적 정교화에 치중하느라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전통을 포기했고, 철학은 고전이나 사상가에 대한 주석과 해설에 주력하면서 실천적 주제를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가장 현실적 주제인 시장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시도한다.
▲ “철학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학문이지만 진정한 보편성은 ‘지금·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한국의 시장경제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구체적 보편성을 탐구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윤평중 교수. /이명원 기자 |
이어 반(反)시장 정서의 지적 원천인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마르크스는 시장질서의 보편성을 강조했던 헤겔을 부당하게 '관념론자'로 왜소화시키면서 시장과 이에 기반한 시민사회를 부정했고, 결국 이것이 현실사회주의 붕괴의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실천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죽었지만 지식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反)시장주의의 뿌리는 마르크스이기 때문에 시장철학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시장은 정의(正義)와도 모순적이지 않다. 정의는 사회적 신뢰와 법치가 핵심인데 이들은 시장질서에서 가장 잘 구현된다. 하지만 그가 시장이 만능이라는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성과 공정·공평이 요구되며, 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로 구체화된다. 이런 공정한 시장을 토대로 한 시장철학이 우리 헌법에 담겨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제헌헌법에 이미 포함됐고, 1987년 헌법 개정 때 제119조 1항(공평)과 2항(공정)으로 심화됐다.
그러나 이런 헌법정신이 현실의 사회경제 속에서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윤 교수 역시 정부와 기업이 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와 분배의 강화는 대한민국의 체제 수호를 위해서도 지불해야 할 비용이고, 분배가 미래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교수는 또한 시장철학의 확산과 정착을 위한 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위한 공론장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는 저신뢰사회와 낮은 법치 수준으로 표출되는 한국의 시장 왜곡이 조선시대로 소급되는 오랜 역사적 유산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웃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유달리 상업을 천시하고 억압했던 조선 문명의 전통이 지금도 건전한 시장질서와 성숙한 시민정신의 발달을 가로막고 있어 문화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철학은 통일문제로도 연결된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북한에서는 시장의 성장이 힘들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가 역전될 때만 북한의 변화와 통일 논의가 가능하다. 윤 교수는 북한의 장마 당 경제 확산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따라서 대북 지원은 북한의 시장 확산을 유도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평중 교수는 "자발성, 창조성, 효율성, 자기 혁신, 법 앞의 만인 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시장은 깨어 있고 성숙한 삶의 기반이 된다"며 "현실의 시장이 천민자본주의 같은 약점을 드러낸다고 해서 시장 자체를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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