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
구학서 신세계 회장 ( 조선 / 2010.06.22)
우리가 사실을 잘못 판단하는 이유는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선입관이나 고
정관념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반면 신념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은 깨뜨리면 좋은 것
이고, 신념을 바꾸면 변절자이고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신념을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존재라고 한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의 저자인 심리학자 마이클 셔머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에 현혹
(眩惑)되는 이유에 대해 인간이 감정적 이유로 도달하게 된 신념들을 합리
화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안함 사건에 관해 일부에선 사실이 제시돼도 여전히 판단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넘어 오히려 신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과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쪽이면 무조건 옹호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편이면 무조건 못 믿고 거짓말로 매도하는 유치한 양분적 사고가 인터넷에서는 정설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천안함 선체가 인양되어 내부 폭발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외부 충격의 원인은 어뢰이며, 그 어뢰의 부품들은 북한의 공격임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부정적 시각을 갖는 것이 마치 뭔가 아는 것처럼 부추기기도 한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은 잘못된 사실을 알게 되면 바뀌지만,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건 발생 몇주가 지나서 민간의 쌍끌이 어선이 조류가 급한 서해 바다에서 어뢰 부품을 찾아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것을 찾지 못했다면 의혹 제기로 우리 사회 혼란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말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겐 여전히 모든 게 의혹투성이일 뿐이다.
그들의 의혹 제기에 대해 정부는 네티즌까지 참여시켜 함체와 증거물들을 보여주고 질의 응답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아무리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을 꾸미고 유엔 안보리를 상대로 사기 칠 집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을 제시한다고 과연 그들의 생각이 바뀔 것인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를 저술한 인지언어학자 레이코프는 사실이 자기가 믿어왔던 것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 믿어왔던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사실은 무시된다고 주장한다. 사실을 눈앞에 보여주면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희망이며, 인간의 두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기에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들에겐 사실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생각의 틀을 바꿀 수 있도록 올바른 가치관과 국가관을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교육으로도 이들의 신념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존중하고 토론과 설득, 협상에 의해 이견을 좁혀 공동 목표를 추구해 간다. 그러기에 누구나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이 전제되고, 자신의 신념에 따른 주장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은 근본적으로 신뢰(信賴) 부족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정치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말처럼 시민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신뢰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지금부터라도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키워가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결코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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