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사회기강에 증오·음모론만 넘쳐나…
대한민국 거부하는 사람들 즐비한 인터넷
역대 정부의 거짓 탓 인정하고 대처해야
지금 인터넷은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거나 좋은 찬스를 놓친 한국 선
수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다. 몇 달 전에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곧이은 세계선수권에서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2등을 한 김연아 선수
에 대한 비방으로 인터넷 공간이 뜨거웠다. 아쉽긴 하지만 저주의 대상
은 될 수 없는 일에 상당수 네티즌들은 "죽일 X"과 같은,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욕설을 늘어놨다.
어느 나라에서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심하게 분노와 증오가 넘쳐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분노의 성향은 어린 시절 심리적 상처와 좌절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한다. 자기 정체성에 문제가 있을 경우 분노가 분출하고 흑백논리적 사고를 갖기 쉬운데, 이런 경계성 인격 장애인들은 어린 시절 정서적 상처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엄청난 경쟁사회이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모든 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확연히 갈라놓는 면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덤비는 공부만 하더라도 소위 '승자'는 극소수만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한국사회의 발전이 워낙 격변적인 스피드로 이뤄져 전체적으로는 평균적인 생활 여건의 극적인 상승을 가져왔지만, 상대적인 박탈감과 패배의식을 낳기도 했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한국 사회가 '헝그리 사회'에서 유례 없는 '앵그리(angry) 사회'로 변환됐다고 설명한다.
숨 가쁜 변화 속에서 한국사회는 성숙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곧이어 닥친 정보화 시대에선 가상공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면서 증오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해방공간'이 갑자기 생겨났다. 오프라인에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성숙한 행동을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재수생이 아인슈타인을 멋대로 비판하는 곳이 인터넷 공간이다. 김영하는 소설에서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이라 묘사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키보드를 잡는 순간에도 누구나 신(神)이 된다는 착각을 갖게 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잘 요약했듯이 "인터넷은 신이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다."
인터넷 토론공간에선 이성이 마비된 괴담과 음모론이 주류를 이룬다. 무슨 사건만 생기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너도나도 '전문가'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광우병 전문가'가 됐다가 최근에는 '군함 좌초 전문가'로 변신했다. 현역장교, 교수 등 전문가를 사칭해 올라오는 '폭로'나 '권위 있는 주장'들은 사실 무직자, 배달부, 심지어는 중·고생의 행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문호(文豪) 아나톨 프랑스가 말했듯이 "멍청한 말이 수백만의 공감을 얻더라도, 이는 여전히 멍청한 말일 뿐이다."
"…삶과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표절하는 것 같다. …남루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비밀이 필요하니까."(정미경 소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요즘은 누가 누굴 베끼는지 모를 정도로 북한당국, 인터넷 괴담과 일부 언론매체들은 서로의 멍청한 얘기를 표절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남루한 까닭일까.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삶은 남루하다지만 이들의 상호표절은 정도가 심하다.
불신과 증오가 판치는 것은 역대 정부가 국민들을 호도하고 속여 온 죄과에 따른 업보이기도 하다. 여기에 다른 요소들이 가세하면서 한국은 정신적 무정부 상태를 맞고 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태국처럼 사회 기강이 무너진 나라를 보면서 걱정하지만, 이미 온라인 가상공간에선 한국도 기강이 무너진 지 오래다. 가상공간에서 배태된 이런 분위기가 오프라인 실제 사회로 쉽게 전이(轉移)되는 것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사회통합 없이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상공간에서 심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처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