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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뷰] "미국이 '제국'에서 물러난다면 세계는 더 큰 위험에..."

설지선 2010. 6. 19. 10:10

[전문가 리뷰] "미국이 '제국'에서 물러난다면 세계는 더 큰 위험에 빠질 것"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조선 100619)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 흥망사

니알 퍼거슨 지음/김일영·강규형 옮김/21세기북스/564쪽/2만8500원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이던 2002년,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가안보전략'을 발간했다. 테러집단의 공격은 예측할 수도, 억지할 수도 없는 막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선제공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듬해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반(反)테러'를 명분으로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한 이라크 전쟁은 국제연합의 승인을 얻지 못했고,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근대 국제정치의 근간이 된 국가주권을 침해한 미국이 내세울 수 있는 변론은 무엇이었을까?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국가주권 원칙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초(超)국경적이어서 개별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통치형태, 즉 지구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하나의 대안이 '제국'이다. 제국은 본질상 개별국가의 주권을 부정한다. 그러나 개별국가들이 주권을 희생하여 지구적 공공재를 생산할 수 있다면, 혹은 제국만이 지구적 공공재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면 제국의 출현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이다.

미국 하바드대의 역사학자 니알 퍼거슨제국은 필요하고, 좋은 제국이 가능하며,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제국으로 스스로 우뚝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중반까지 찬란한 제국의 지위를 구가하던 영국에서 성장한 퍼거슨은 국제정치사와 금융경제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유주의 제국'인 미국의 분발을 촉구한다.

2004년에 원저가 출판되자마자 이 책은 부시 행정부 1기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제국' 논쟁의 중심에 섰다. 전작 '제국: 영국 세계질서의 흥망과 초강대국에 대한 교훈'(Empire: The Rise and Demise of the British World Order and the Lessons for Global Power)에서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국식 세계화(Anglobalization)가 세상에 끼친 긍정적 유산을 변호한 이래, 저자는 21세기 미국이 본격적인 제국을 운영해야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력·군사력·소프트 파워 부분에서 미국이 과거 존재했던 어느 제국들보다 전례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꼼꼼히 논증한 이후, 퍼거슨은 제국 없는 세상, 미국이 뒷짐 지고 있는 21세기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과거에 비해 매우 싼값으로 엄청난 무력을 구할 수 있는 세상, 탈(脫)식민화 이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한 많은 실패국가들이 헤매고 있는 세상, 테러집단과 전염병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미국은 그저 하나의 국가로 머물러도 되는 것인가. 세계 군사비의 거의 절반을 지출하고, 여전히 주요국들의 GDP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며, 문화적 영향력에서 뒤따를 자가 없는 미국의 책임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퍼거슨이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의 제국화가 아니다. 오히려 제국 없는 시대, 모두가 절실한 지구적 공공재를 아무도 생산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의 세계, 유일한 후보자인 미국이 자신의 역할을 떠맡지 않는 세계이다. 저자는 미국이 스스로 제국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제국이며,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제국이 되기를 거부하는 제국이며, 국민들이 제국적 마인드를 갖지 못한 제국이라고 지적한다.

퍼거슨은 이어 미국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유럽중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 세련된 문화, 그리고 국가연합을 만들어낸 유럽은 매력적인 제국의 후보이다. 그러나 저자는 유럽연합의 시너지가 여전히 의심스럽고, 경제적 성장동력이 활발하지 못하며, 노화되는 유럽이 미국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2050년경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에서 세 명 중 한명은 65세 이상이 되고, 유럽의 두 배가 넘는 이슬람 사회의 출생률로 인해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민들이 유럽에 밀려들어 '유라비아(Eurabia)'가 출현할 수도 있다. 각광받는 중국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도 저자는 회의적이다. 성장신화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신흥시장의 일반법칙이 베이징에서 예외가 될지 알 수 없고, 자유시장 경제와 공산주의의 독점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불완전함도 논쟁거리다.

퍼거슨의 논의는 확실히 도발적이다. 근대 국제정치를 주권국가들의 집합으로 보아온 시각을 교정하여, 제국들의 세계로 재조명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의 시대가 제국의 시대보다 더 많은 혼란과 고통을 제3세계 국가들에 가져다주었으며, 국제연합과 같은 다자주의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주장한다. 억압적 제국과는 달리 자유주의 제국이 남길 수 있는 긍정적 유산이 있음을 논증하려고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과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제국 논쟁은 후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적 다자주의와 미국의 제한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위기는 G20, G2 등 새로운 지구적 거버넌스의 역할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역할, 제국적 단위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초국경적인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지금, 제국이 아니라 국제적 다자주의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