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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터뷰] 윤덕용 천안함 합동조사단 공동단장 / 강인선 (조선 100531)

설지선 2010. 5. 31. 08:05

[조선 인터뷰] 윤덕용 천안함 합동조사단 공동단장

강인선 기자 (2010.05.31)

"과학자들, 선체만 보고도 "어뢰"… 추진체 나오자 바로 결론"


미국 조사단 에클스 준장  “어뢰잔해 미리 나왔다면 그걸로 바로 결론났을 것”
“터무니없는 좌초설 아직 주장하는 사람있어 차라리 그냥 놔두자”
광우병·잠수함 혼란은 모르면서 안다 착각 탓 기본적인 과학 소양 필요


윤덕용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단장(KAIST 명예교수·70)은 2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사과정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건 과학적인 접근방식보다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로 끈질기게 증거를 찾은 결과”라고 했다. 다음은 윤 단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공동단장으로 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사회에 문제가 생겼을 땐 어렵더라도 기여하는 것이 의무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땐 도중에라도 그만두겠다고 했다. 모든 진행과정을 다 파악하기 위해 천안함 인근 해역에 있던 독도함과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한 달여를 지내면서 조사과정에 참여했다.”

―중간에 조사단에서 뛰쳐나올 뻔한 위기는 없었나.

“없었다. 외국인들이 지켜보고 있고 발표문의 단어 하나 가지고도 실랑이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단어가 문제가 됐나.

“예를 들어 ‘북한이 제조하고 사용 중인 어뢰’라는 표현에서 스웨덴 조사단이 ‘북한이 제조했다는 건 동의하지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지 않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북한 무기 체계로 운영 중이면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식으로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조사단은 한국어를 하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최종 발표문의 영어 번역을 확인하게 했다.”

―외국 조사단들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나.

“모두들 국가의 명예를 걸고 일한다는 자세였다. 호주 조사단은 김치도 같이 먹고 자세도 꼿꼿하고 모든 게 정확했다. 나중엔 진실을 찾아가는 우리 태도에 감동했다는 편지를 써서 내게 주고 갔다. 다들 최종 보고서는 국가 최고지도자에게까지 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학자로서 점수를 매긴다면 이번 조사결과는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줄 수 있나.

“98점은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결과가 나오고 나서 학술대회를 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외국에서도 침몰된 배와 어뢰의 잔해까지 건져 올린 경우는 없다. 그래서 군사적·과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외국에 그런 사례가 전혀 없나.

“천안함 함수와 함미를 인양하는 것은 엄청난 공학적 프로젝트였다. 미국과 호주 조사단이 다 놀라면서 ‘한국이 조선대국이라 저런 일을 하는구나’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가스 터빈실이 침몰된 위치에 그대로 있었는데 한달 동안 수색작업 한다면서 도대체 뭐 했느냐고 하더라. 함수, 함미 건져내고 시신 찾는 작업 했다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천안함 조사결과를 믿는 사람은 72% 수준이었다.

“지금도 9·11 테러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예를 들어 인양한 어뢰 잔해에 쓰인 ‘1번’이란 글씨의 잉크 성분을 분석한다고 하자. 결과가 나와도 ‘그걸 어떻게 믿나’, ‘어떤 기기로 분석했나, 그 기기를 만든 공장에 가보자’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한이 없다.”

―20일 조사결과 발표 후 주변에서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나.

“없었다. 나를 아는 분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조사결과가 수긍이 간다면서 다들 수고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천안함 46용사나 수색작업을 하다 희생된 한주호 준위와 실종된 금양호 선원들을 생각하면 내가 하는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윤덕용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이 26일 조선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천안 함 침몰 원인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물리학과 재료공학을 공부한 덕에 이번 조사과정에서 낯선 분야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조사결과 발표일을 닷새 앞둔 15일 어뢰 추진체의 일부가 발견됐다. 어뢰의 잔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발표 내용은 달랐을까.


“기뢰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신 기뢰는 어뢰와 거의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15일 전까지 조사단은 함수·함미만 분석해서 어뢰공격에 의한 버블효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봤다. 어뢰 가능성이 높다고 봤던 건 군사작전 측면에서의 판단이었다. 실제 작전을 해본 군인들이 ‘그런 상황에서 기뢰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뢰 추진체의 일부를 인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사단의 반응은 어땠나.

“그 전에 한 조사만 가지고도 천안함이 버블효과로 절단돼 침몰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뢰 추진체가 발견되자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걸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국 조사단의 토머스 에클스 준장이 ‘처음부터 발견했다면 이것이 결론이라고 말하고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사단은 처음부터 어뢰 잔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수색을 했다는데?

“에클스 준장이 오자마자 ‘어뢰라면 뒷부분이나 날개의 일부 또는 파편이, 기뢰라면 쇠로 된 체인 등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그런 쪽을 찾아보라’고 했다. ADD(국방과학연구소)도 어뢰를 개발하면서 실험을 해보니 뒷부분이 남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쌍끌이 어선을 동원해 찾지 않았나.

“쌍끌이로 훑어버리면 사고해역의 해저를 완전히 흐트러뜨리게 된다. 음파탐지기(소나)가 최신장비라고 생각해 먼저 탐색을 해본 것이다. 탐사와 인양은 군사작전적인 판단이었는데, 쌍끌이가 원시적이긴 해도 과거에 잔해물을 찾아낸 적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시도해본 것이다. 조사결과 발표 때 쌍끌이가 늦어진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어뢰 추진체를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엔 어떻게 북한의 공격임을 증명하려 했는가.

“혹시 어뢰조각이라도 나오면 조성분석을 해서 북한에서 많이 쓰는 조성이라는 걸 밝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대했다. 실제로 파편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 천안함 것이었고 어디서나 쓰이는 재질이라면 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북한의 소행임을 증명하는 건 미국·캐나다 등 5개국이 참가한 정보팀의 소관이었다. 정보팀 관련 사항은 제가 말할 수 없다.”

―쌍끌이로 찾아낸 어뢰의 잔해가 천안함을 공격한 그 어뢰라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흰색 흡착물이다. 배에 올라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X레이 분석을 해보니 비결정체의 산화알루미늄이 대부분이었다. 어뢰의 잔해에서도 같은 성분의 산화알루미늄이 발견됐다. 알루미늄 분말은 고온에서 물과 반응하는데, 요즘은 어뢰나 최신 기뢰의 폭약에 무게 대비 18~30%의 알루미늄 가루를 넣는다. 알루미늄 분말은 느리게 반응한다. 폭발이란 결국 가스가 나오고 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터지면 충격파가 크고, 느리게 반응하면 가스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버블효과를 노리는 폭약엔 알루미늄 분말을 넣는다.”

―요즘도 좌초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그냥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듯한 부분이라곤 하나도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천안함 표면을 보면 ‘디싱(dishing)’이라고 움푹 팬 부분들이 있다. 배를 만들 때 얇은 철판 뒤에 철로 만든 강화대를 댄다. ‘디싱’은 외부에서 압력을 받아 강화대가 받쳐주지 않는 부분이 안으로 밀려 들어간 것이다. 디싱은 절단면에 가까울수록 심해진다. 좌초라면 절대 생길 수 없는 현상으로 좌초가 아니라는 증거다. 또 압력이 외부에서 왔다는 것이므로 내부폭발이 침몰 원인일 가능성도 없다는 뜻이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했다는 건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인가.

“배 밑에 불쑥 튀어나온 소나돔(음파탐지기 덮개)이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만일 좌초라면 가장 약한 부분인 소나돔이 손상돼야 한다. 또 천안함 침몰 인근해역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암초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핵잠수함과의 충돌, 또는 오폭설은?

“잠수함과 충돌했다면 선체의 파괴 형태가 달랐을 것이다. 천안함에 충돌한 잠수함의 형태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또 주위 함선의 무기체계를 전수조사했는데 그런 무기가 발사된 적이 없어, 오폭설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양된 어뢰 추진체에 ‘1번’이란 손글씨를 봤을 땐 어떤 느낌이었나.

“한글을 쓰는 같은 민족이 공격을 해 우리가 큰 희생을 치르게 됐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슬펐다. 우리측에서 쓴 거 아니냐는 괴담도 있던데, 24시간 보초를 서는 상황에서 누구도 접근할 수도 없었다.”

―최근 국회 천안함 특위에 나갔을 때 정치인들이 몰아세우던데.

“그분들은 그렇게 말해야 하는 입장이 있을 것이다. 심리학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분들도 마음속으로는 조사결과가 맞는다는 걸 아실 것이다. 조사결과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몰아세워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과학자가 논문을 쓸 땐 그 내용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는 걸 늘 의식한다. 이번 조사도 그런 마음으로 했다.”

―스웨덴 조사단이 발표문 서명에 주저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스웨덴에선 상선 전문가들이 왔다. 어뢰나 기뢰 관련 문제가 거론되면 본국의 전문가에게 문의해야 해서 답이 늦어진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문분야가 아닌 경우엔 의견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사결과가 나왔는데도 왜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인문학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인문·사회 분야에 계신 분들도 자연과학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판단을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과학을 가르쳐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광우병, 핵전쟁 등이 다 과학적인 이슈들이다. 지식이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모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필요하면 공부해서 알면 된다. 그러나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하면 희망이 없다. 어떤 의미에선 과학이 아니라 소양의 문제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자기성찰이 필요하고 진실을 찾는 데는 겸허한 자세가 중요하다.



윤덕용 공동단장은

윤덕용 KAIST 명예교수(70)는 경기고 졸업 후 미국 MIT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응용물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웨인주립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귀국해 KAIST에서 34년 동안 교수로 일했다. 호암상·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제자들 논문에 불필요한 단어가 하나라도 눈에 띄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 엄하고 무서운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겨울엔 60일간 스키를 타고 매일 수영하는 스포츠광이다. “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란 게 평소 지론이다. MIT 재학시절엔 아이스하키 선수였고 유도반 회장이었다. 암벽등반도 좋아한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공동단장 활동은 최종 보고서가 나오는 6월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