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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터뷰]'한국방송사극의 개척자' 신봉승 작가 / 조선 (100524)

설지선 2010. 5. 24. 09:21

[조선인터뷰] '한국 방송사극의 개척자' 신봉승 작가

  • 이한우 기자 / 입력 : 2010.05.23 23:27

"좌파 10년간 우리 역사를 부정하다 보니 正史가 희화화돼"
'여자' 신윤복·'깨방정' 숙종…요즘 사극은 재미만 추구
방송제작 간부·작가들 역사의식 수준 떨어져
첫 사극 '사모곡' 하고 나니 서재가 역사책으로 가득 차
조선시대와 같은 품격이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가?

국내 최고의 대하드라마 작가 신봉승(辛奉承·78)씨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주말 개인연구실인 서울 관훈동 한국역사문학연구소에서 만난 신씨는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국내 방송사들의 퓨전사극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놓았다.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마치 알고나 있다는 듯이. "멀쩡한 남자인 신윤복을 여자라고 해놓고 사극 운운해서는 안 됩니다. 안중근을 여자로, 유관순을 남자로 바꾸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이라고 해서 여자를 남자로,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은 괜찮다? 그건 아니지요."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방송 사극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제1세대 방송사극의 개척자이자 은퇴를 모르는 현역작가 신씨의 진짜 불만은 다른 데 있었다. "사극은 아무리 방송 드라마라고 하지만 역사의식이 중요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라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자그마한 고민이라도 심어줘야 하지요." 영원한 현역 신봉승씨는 현실문제에 대한 걱정과 비판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우리 방송들이 꾸준히 사극들을 방영하고 그중 종종 인기를 끄는 작품들이 있다. 최근에는 영조의 모친을 다룬 '동이'가 인기다. 사극작가로서 요즘 사극들을 보는가?

"일단 사극은 새로 시작하면 본다. 몇 차례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부터 보지 않는다. '동이'도 요즘은 보지 않는다."

―'동이'도 아니다 싶은가?

"그보다 왜 최근 몇년간 우리 사극들이 이렇게 됐는지를 말하고 싶다. 사극의 수준은 엄밀히 말하면 작가나 연출가보다는 사극 제작과 방영을 결정하는 방송국 제작담당 간부들의 수준이다. 아마도 요즘 같은 작품들은 10여년 전 방송사 간부들의 수준이었다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극의 수준은 국민들의 역사의식 수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방송 사극들의 문제점을 듣고 싶다.

"방송 사극의 선배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우리 사극에는 '국가적 맥락'이 없다. 적어도 사극이라면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저변에 까는 역사인식이 기본이다. 이런 역사인식은 정확한 사실과 적절한 해석이 조화됨으로써 나오는 것이다. 도대체 숙종(肅宗)이라는 인물을 '깨방정'과 연결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역사인물을 친근화한다고? 그건 아예 사실이 아니다. 위엄과 카리스마를 갖춰서 숙(肅)이라고 했다는 기초적인 사실도 모르니 그런 왜곡된 군주상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자체가 근거가 없다 보니 해석의 묘미는 아예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요즘 사극들은 역사 속의 이름만 빌려왔을 뿐 한편의 활극이나 사랑타령일 뿐이다. 재미만 추구한다. 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작진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 방송의 사극은 왜 이렇게 됐는가?

"역사의식을 가진 작가, 국가적 맥락의 중요성을 아는 작가가 거의 없다. 게다가 지난 10년 좌파정권이 방송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뒤집어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사(正史)는 희화화됐다. 어떻게 KBS가 좌파를 미화하고 건국대통령을 비하하는 '서울, 1945'라는 드라마를 버젓이 내보낼 수가 있는가? 현재 일본은 어려운 시기다. 이럴 때 NHK가 어떤 드라마를 방송하는지 아는가? 지난해 말에는 명치유신기 새 나라 건설을 위해 몸바친 사람들을 재조명하는 시바 료타로 원작 '언덕 위의 구름'을 방영해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사카모토 료마를 재조명하는 '료마전'을 방송해 일본 열도에 다시 료마 붐을 일으키고 있다. 장희빈(경종의 어머니)이나 최숙빈(영조의 어머니)을 재해석한다면서 '깨방정 숙종'을 만들어내는 것과 명치시대와 료마를 재조명하는 일 중 어느 쪽이 국가적 맥락에 기여하는가?"

“적어도 사극작가이고자 한다면 역사의 행간을 읽는 역사의식, 국가적 맥락에 대한 깊은 고민, 권력에 대한 이해를 갖춰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는 작가라면 그냥 멜로물을 쓰라”고 말하는 신봉승씨./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1972년 연산군 이야기를 다룬 '사모곡(思母曲)'부터 40년 가까이 역사드라마를 써왔다. 본인은 그런 비판으로부터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사극의 흐름을 자신 있게 비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런 오류에 빠져 있다가 스스로 힘겹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신성일·엄앵란이 주연을 맡은 청춘물의 단골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동양방송(TBC)의 편성부 차장이 사극을 써보라고 권했다.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지금은 장희빈을 쓴 이서구 선생, 왕비열전을 쓴 김영곤 선생이 계시지만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 당신이 맡아달라'고 했다. 그 말에 OK를 했다. 그때 이미 이서구 선생은 70대, 김영곤 선생은 60대였고 난 막 40세였다. 그런데 그때는 조선왕조실록이 번역돼 있지 않아 조선후기에 이긍익이 쓴 야사집 '연려실기술'로 공부해가면서 '사모곡'을 써내려갔다. 드라마가 대박은 났는데 신문에서 매일 아침마다 신봉승 사극이 고증이 됐니 안됐니 하며 난리가 났다. 그래서 일단 실록을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는 아직 실록이 3분의 1밖에 번역되지 않았을 때다. '사모곡' 시작할 때만 해도 내 서재에 역사책이 한 권도 없었는데 끝나고 나니 현대물 책은 다 없어지고 역사책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 바람에 1980년대에 '조선왕조 5백년'을 10년 가까이 방송할 수 있지 않았는가?

"물론이다. 그때를 기준으로 보면 조선왕조실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完讀)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번역본으로 치면 300쪽짜리 책으로 400권이 넘는 분량이다. 아직 번역이 안 된 부분은 한학자 김용진 선생을 찾아가 술과 사례를 바치며 읽어달라고 하고서 녹음을 한 다음 풀었다. 그런 식으로 다 보고 나니 9년이 걸렸다. 야사(野史) 사극이 정사(正史) 사극으로 바뀌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자부한다."

―실록을 완독하고 나니 역사를 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던가?

"조선 역사의 위대함을 새삼 절감했다. 야사에는 재미만 있다. 정사에는 국가와 경륜이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 유지될 수 있었던 저력을 보았다. 태종이나 세종과 같은 비전을 가진 지도자도 있었고 임금 앞에서라도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리는 조광조 같은 기개의 인물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제대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들을 소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조선을 너무 좋게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식민지 경험 때문이겠지만 조선, 특히 구한말을 부정적으로 볼 만큼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구한말에도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시청률에서는 한자리를 기록해 실패했지만 이동인을 비롯한 개화세력의 뿌리를 조명한 '찬란한 여명'(1995년 KBS 1TV 방영)이라는 작품에 큰 애착과 아쉬움을 갖고 있다. 요즘처럼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뛰어났다면 개항기의 조선사회를 생생하게 복원해 좋은 반응을 얻었을 텐데. 그랬다면 우리의 독자적인 근대사상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료를 살펴보니 기자가 중학생이던 무렵 재미있게 보았던 '임금님의 첫사랑'(1975년 동양방송 방영)도 집필했던데.

"창피하다. 그때만 해도 역사의 행간을 읽는 능력도 별로 없었고 특히 정치랄까 권력의 이면에 주목하지 못했다. '국가적 맥락'의 중요성도 몰랐다. 그래서 지금 철종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다. 예전에는 '강화도령' 철종이 강화도에 두고온 연인을 데려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 쓰고 있는 작품은 재위 5년쯤 지나면서 자신을 옹립한 신하들로부터 독립하려고 애쓰는 철종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그도 임금 노릇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또한 실록에 그대로 나온다. 어느 임금이건 허수아비에 만족하는 임금은 없었다. 일단 임금이 되고 나면 독자적인 권력을 가지려 모든 노력을 다한다. 실패했을 뿐이지. 그런데 '임금님의 첫사랑'에서는 철종을 그저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는 임금으로 묘사했다. 요즘 사극 만드는 사람들과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때와 달리 지금이야 실록이 전부 번역돼 있지 않은가? 달리 해석을 하더라도 역사가 허용하는 범위를 지키려는 자세가 있어야 사극(史劇)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조선 500년의 시각에서 대한민국 60년을 조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조선보다 낫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격(格)이 다르다. 조선은 비록 가난했지만 품격이 있는 나라였다. 대한민국에 무슨 품격이 있는가? 스승과 제자 사이 하나만 보자. 스승의 날이라고 지금은 학교가 아예 문을 닫는다. 그러나 조선은 500년 내내 스승은 임금, 아버지와 같은 존경을 받았다. 이런 비교는 정치분야에서도 가능하다. 조선은 뛰어난 식견을 실천하는 것이 정치였다. 우리 주변에 뛰어난 식견의 정치인이 있는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고 실천하는 용기 있는 정치인이 있는가? 언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극 작가로서 요즘 국사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극이나 학교의 국사교육이나 비슷한 신세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 선조들의 삶을 통해 지혜와 교훈을 얻는 것이다. 국사교육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선조들의 지혜와 교훈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요즘 아이들은 나라사랑의 중요성도 모르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없다. 사극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대왕 세종'을 하는데 15세 이상만 보도록 돼 있었다. 어떻게 세종의 이야기를 중학생도 보지 못하게 하는가? 그것도 KBS가. 언론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한심한 일 아닌가?"

―얼마 전 서울 중앙지검 검사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 화제가 된 일이 있는데.

"지난주에도 수원지검 검사들에게 특강을 했다. 검사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당신들은 이곳을 나가도 변호사를 할 수 있다.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직업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스폰서 논란이 나오는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조광조가 대사헌이었으니 오늘날의 검찰총장이다. 이 중에서 조광조를 나의 선배라고 생각하며 그 포부와 기개를 닮으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타했다."

신봉승 작가는

방송작가 신봉승은 1933년 강원도 강릉생(生)으로 강릉사범학교를 나와 6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문학청년이었던 신봉승은 1962년 시나리오 '사랑은 주는 것'이 영화화된 것을 계기로 해마다 대여섯편의 시나리오를 쓰는 한편, TV시대 개막과 함께 방송드라마에도 진출한다. 영화화된 그의 시나리오 중에는 '맨발로 뛰어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하숙생', '서울은 만원이다' 등이 있고, 그가 쓴 역사드라마로는 '사모곡', '연화(蓮花)', '인목대비', '임금님의 첫사랑', '별당 아씨', '교동 마님', '조선왕조 500년', '찬란한 여명' 등이 있다. 말 그대로 한국 방송드라마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더불어 조선시대 관련 역사저술에도 관심을 쏟아 140권에 이르는 저서가 있으며 최근에는 조선시대 선비정신을 재조명한 '문묘18현'(청아)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