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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소나무 역전극 / 홍사종 (조선 100521)

설지선 2010. 5. 22. 13:45

[ESSAY] 소나무 역전극

  •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2010.05.21 23:07)

척박한 땅에 속성수로 쑥쑥 큰리기다소나무 저 혼자 살다 40년 뒤 쇠락을 맞이했다.

더디게 자랐지만 양분과 햇빛을 고루 나누며 큰 조선소나무는 되레 울창해졌다.

힘이 있을 때 아끼고 나눠야하는 것은 나무 세계만은 아닐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고 6·25 전쟁을 치른 우리나라 산은 온통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땔감과 먹을 것조차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은 연료를 산림에서 구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줄을 잇기 위해 소나무 속껍질까지 벗겨 먹었으니 산림 파괴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1960년대 후반 초등학교에 다녔던 내 기억 속의 고향,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서신면 용두리 일대 산은 황폐했다. 동네의 나무꾼들은 겨우 흩어져 생명을 유지하던 다복솔의 낙엽인 솔가리까지 거름이 되기 전에 갈퀴로 긁어갔고, 토사를 지탱해주던 나무 등걸도 도끼로 마구 캐어갔다.

송충이 피해가 극심하던 1970년대 어느 날, 동네에서 유일하게 온전했던 고향 뒷동산의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조선소나무들까지 몽땅 베어져 집앞 왕모대 포구에서 배에 실려 어디론가 팔려갔다. 그때부터 고향집 문전옥답도 장마철이면 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에 매몰되는 일이 잦아졌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산림녹화에 총력을 쏟았던 시절도 이즈음이 아닌가 싶다.

일러스트=이철원기자 burbuck@chosun.com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와 내 동생은 식목철이면 학교 가는 날보다 나무 심기에 동원되는 날이 더 많았을 정도로 동네 민둥산에 묘목 심기에 바빴다. 그때 조선소나무 대신 조림용으로 각광받던 나무가 리기다소나무다. 북미 원산의 리기다소나무는 대단한 속성수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온 산에 정착했다. 아버지와 온 가족, 초등학교에서 동원된 고사리손 일꾼들과 함께 우리는 이 나무를 고향 뒷동산에 열심히 심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태어났고 내가 태어났던 고향의 옛집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나는 뒷동산에 심은 리기다소나무가 얼마나 빠르게 크는지를 지켜봤다. 숲에서는 조선소나무의 대표 격인 적송(赤松)의 씨앗이 떨어져 리기다소나무와 생존경쟁을 했지만 견줄 바가 못 되었다. "거름기가 전혀 없는 땅에서도 저렇게 잘 자라는 나무가 있다니…."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이 소나무의 경이로운 성장을 지켜보면서 조림지 사이에 저절로 자란 조선소나무를 모조리 솎아냈다. 산소 주변의 조선솔 무리를 제외하곤 리기다소나무가 이내 고향 뒷산의 권력을 장악했다.

실제로 리기다소나무의 생장 능력은 어떤 소나무 종류도 당해낼 수 없었다. 투박하고 거친 마디를 불쑥불쑥 키워내는 솜씨도 일품이거니와 햇살을 욕심껏 받아들인 억센 3엽(葉)의 이파리 또한 야들야들하게 느끼게 하는 적송의 2엽 이파리와 비교됐다. 동네 사람들은 굵은 몸통을 키우며 숲을 가득 채워가는 먼 나라에서 온 리기다소나무를 그 어떤 나무보다 귀하게 대접했다. 미제면 다 좋게 보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로부터 30~40년이 지났다. 내 고향집 뒷동산 리기다소나무 숲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억세고 도도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지금은 여기저기 푸사리움이라는 병에 걸린 추레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거꾸로 맥없이 자라나던 조선소나무 숲은 울창한 숲으로 거듭났다. 성장을 거의 멈춘 동네의 리기다소나무는 목재 가치가 없다고 알려지면서 수목 갱신 사업의 일환으로 점차 베어져 사라지고 있다.

리기다소나무는 왜 더 크게 자라나지 못하는 것일까. 산림과학원의 박사들로부터 '나무박사'라는 별명까지 얻은 나의 나무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은 이런 역전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동안 병든 리기다소나무 숲을 살리기 위해 산림용 고형 비료까지 사다가 뿌렸지만 병마에서 겨우 벗어난 남루한 모습으로 뒷동산을 지킬 뿐이다.

최근 나는 비료를 땅에 묻어 주다가 그 이유를 발견했다. 생장하는 습관이 달랐던 것이다. 조선소나무의 뿌리는 서로 비켜가면서 뻗는다. 땅속의 양분도 서로 나눈다. 가지에 달린 잎도 마찬가지다. 나뭇가지들은 빛을 골고루 나누기 위해 공간을 요리조리 나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게 조선소나무다.

이에 비해 리기다소나무는 생장 습관이 철저히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다. 양분 싸움을 위해 리기다소나무는 뿌리 뻗는 것도 다른 땅의 충분한 공간을 놓아둔 채 서로 한쪽 방향으로만 뻗는 경우가 많다. 광합성의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가지와 이파리들도 서로에 대한 배려를 외면하고 한 방향으로만 뻗는 경우가 많다. 빛을 나누어 쓰지 못하다 보니 숲은 빈 공간으로 헐겁기 짝이 없다. 이렇듯 리기다소나무는 초기에만 맹렬하게 성장을 거듭할 뿐 40~50년만 지나면서 기운을 소진한 채 제왕의 모습을 잃는다.

처음에는 더디게 성장하던 조선소나무 숲은 나이가 들수록 빈틈이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수세를 만들며 성장해 수백 년 세월을 이겨내고 결국 궁궐의 대들보가 된다.

얼마 전 나는 수종 갱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산림조합 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옛날 정부가 심으라 했던 뒷동산의 리기다소나무들을 베어내고 경제 수종인 조선소나무로 바꿔 심으라는 권고다. "역시 우리 소나무가 최고지요."

변한 세상인심도 그러하거니와 한때 척박한 우리의 산림을 일궈낸 일등공신이었지만 저 혼자 이기적 삶을 살다가 쇠락한 운명을 맞이한 리기다소나무의 슬픈 종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땅의 양분을 골고루 나누고 하늘의 빛까지 함께 쓰며 아주 천천히 자란 바보 같던 조선소나무에 진 것이다. 힘이 있을 때 더욱 힘을 아끼고 나누어야 하는 것은 비단 나무들의 세계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