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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스피치 잘하는 CEO가 경영도 잘하더라 / 조선 (100522)

설지선 2010. 5. 22. 13:51

[Weekly BIZ] 스피치 잘하는 CEO가 경영도 잘하더라

김미경 아트스피치연구원장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마이크만 잡으면 덜덜?… 직원들 마음 두드리는 '달변'의 비결은
남이 써준 원고는 결국 '남 이야기'일 뿐 자신만의 콘텐츠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라

모든 CEO는 직원들의 영혼에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꿈꾼다.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경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재는 두툼한 월급봉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원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손발을 움직이게 하려면 CEO의 열정과 비전을 호소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이런 일은 CEO가 때로는 'CSO'로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CSO는 일반적으로는 기업의 최고 전략 책임자(Chief Strategy Officer)를 뜻한다. 하지만 때로는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최고 영혼 책임자(Chief Spiritual Officer)', 또 그런 호소를 일으킬 연설 능력을 갖춘 '최고 연설 책임자(Chief Speech Officer)'가 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내 CEO들은 CSO가 되기 위한 필수 스펙인 스피치(speech)가 많이 부족하다. 평소 그런 기회가 있더라도 아랫사람을 시키거나 남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금 CEO 세대의 경우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말하는 법에 대해 따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경영만 잘한다고 인정받는 게 아니라 스피치도 잘해야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로 각광받는다.

■스피치의 구조는 A-B-A' 로

얼마 전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스피치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경상도 출신인 그는 사투리가 심하다. 억양도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의 발음을 문제 삼지 않는다. 워낙 들을 만한 말을 하다 보니 귀가 알아서 사투리를 걸러내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스피치를 웅변으로 착각한다. 정확한 발음으로 크게 말해 청중에게 '전달 잘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치는 진실한 콘텐츠의 힘으로 내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스피치에 농익은 철학과 경험이 들어가야 비로소 내 말이 되고, 말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무수한 콘텐츠 중에서 할 말을 뽑아내 정리하는 것이다. 이 단계가 됐을 때 비로소 청중 앞에 설 자격이 생긴다. 할 말이 없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이크를 잡지 않는 것이 대중에 대한 예의다.

본격적인 스피치 설계에 앞서 기본적으로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A-B-A' 구조다. 이는 10분 내외의 짤막한 스피치에 주로 쓰인다. 안정감과 완결성을 중요시하는 클래식 작곡의 기본 구조이기도 하다. A에서 주제를 제시하고, B에서는 A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근거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A' 에서는 다시금 본래의 주제로 돌아간다. 그러면 청중은 '아 강연자가 이 주제를 강조하면서 끝내는 구나'라고 안심하면서 감동 혹은 설득에 젖어들게 된다. 실전에서는 A-B-A' 하나만 제대로 훈련해도 스피치의 품격이 달라진다.

얼마 전 아트스피치 CEO과정을 수료했던 한 금융회사 임원이 일본에서 스피치를 하게 됐다. 주제는 '한일 간 금융협력'이라는 딱딱한 내용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직원이 써준 원고를 보니 '바쁘신 와중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해 식상한 말들로 가득했다. 결국 그는 직접 스피치 원고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곧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 방송을 듣자마자 그는 10분 만에 원고를 써내려갔다. 제목은 '1시간30분'. A는 이렇게 시작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 걸렸는지 아십니까. 딱 1시간 30분 걸리더군요. 그런데 이토록 가까운 두 나라의 금융계 사이에 지난 3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B에서는 그동안 있었던 갈등과 오해에 대한 3가지 사례를 들었다. 마지막 A' 에서는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이제 몇 달 후면 여러분도 딱 1시간30분 만에 서울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지난 3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그 비밀을 푼다면 한일 금융협력은 앞으로 30년 이상 전진할 것입니다."

이날 그의 스피치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김미경 원장
■주장이 아니라 진솔한 스토리를 말하라

강연의 주제를 사람 몸통에, 소주제를 팔다리에 비유하자면, 그런 주제 사이를 실핏줄처럼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다양한 에피소드다. 몸통만 있고 실핏줄이 없다면 그것은 썩은 팔뚝에 불과할 것이다. 연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창조적 인재가 되세요!" "회개하고 하느님 믿으세요!" 아무리 외쳐봐야 사람들은 반문할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에피소드의 힘은 강력하다. 쓸데없이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큰소리로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효과적인 에피소드는 연설을 듣는 상대가 미처 설득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스스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다.

한 TV 강연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에피소드를 인용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제가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정말 된통 당한 적이 있어요. 우리 남편 회사는 여름휴가 때마다 팀을 짜서 같은 지역으로 호텔을 잡아주는데 하필 당초 예정과는 달리 남편 회사 부사장 가족이 와 있는 거예요. 난 이 남자, 이렇게 동작 빠른 것 처음 봤어요. 부사장을 보자마자 미친 듯이 뛰어가더니 90도로 절하고 체크인 대신해주고 7층으로 가방까지 옮겨다 주는 거예요.

조금 뒤에는 부사장이 자갈치 시장에 가고 싶다고 해서 따라갔죠. 한데 시장 횟집은 애들이 먹을 게 하나도 없잖아요. 옥수수 통조림만 억지로 3캔을 먹였어요. 몇 시간 버티다 겨우 일어섰는데, 이번엔 부사장 사모님이 5년간 못 뵌 스님을 만나야 한다며 절에 가자는 거예요. 그 더운 날, 절에서 3시간 동안이나 기다리는데 애들이 얼마나 힘들어요.

저녁엔 또 부사장이랑 광안리에서 술 마셔 드리면서 큰소리로 웃고 하더라고요. 무슨 얘기를 저렇게 재미있게 하나 하고 들어봤는데 정말 하나도 안 웃겨요. 난 우리 남편이 그렇게 재미없는 얘기에 잘 웃는 남자인 줄 처음 알았잖아요. 그런데 휴가 갔다 와서 첫째딸이 저한테 울먹이면서 그러더라고요. '엄마, 아빠한테 좀 잘해. 그렇게 안 웃긴 얘기에 4시간 동안 웃는 거 못 봤어? 우리 아빠가 제일 길게 웃었다고.'"

중년 남성의 애환이 주제였던 TV 강연에서 이 에피소드가 끝나자 당시 방청객으로 앉아 있던 100여명의 남자 중 70여명이 눈물을 흘렸다. 똑똑한 청중은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는다. 강요하지 않아도, 주장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관념적 주장이 아니라 진솔한 스토리다.
 

김미경 원장은
피아노 학원하다 스피치 전도사로

기업 임직원 대상 스피치 교육 기관인 '아트스피치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던 1990년대 초, 학원장들을 대상으로 한 경영 노하우 강연을 들으며 '연설'의 매력을 느끼고 스피치 강사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다. 1994년부터 음악에 숨어 있는 감동과 설득의 법칙을 연설에 접목시키는 '아트 스피치'를 주제로 강연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