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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의 시:선] 꽃비 같은 하루 [문화/ 2024-04-17]

택배, 사람 - 박연준 도착과 동시에 떠나야 하는 한 송이 누군가 그를 세고 또 센다 건네기 위해 하루를 다 쓴 한 송이 받으세요 받으시고 영원히, 받으소서 우리와 우리 아닌 것 사이에 낀 한 송이 지나쳤지? 지나쳤지 셀 수 없는, 여름이 오면 좋겠다 - 박연준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꽃비 같은 하루 갈래? 가자. 간단하게 주고받은 다음 새벽부터 아버지를 뵈러 간다.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스무 해. 산소에 가도 아버지는 없는데, 알고도 간다. 동생과 매부와 그들의 아이들과 나와 아내와 어머니가 한 차에 실려 아버지께 간다. 봄이 왔으니까.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길은 참 지루하다. 그러니 온갖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간 있었던 일, 날씨와 경제 걱정. 이야깃거리는 한도 없다...

[유희경의 시:선] 꿈을 가진 마음 [문화/ 2024-04-03]

꿈틀거리다 - 김승희 어느 아픈 날 밤중에 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김승희 시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꿈을 가진 마음 서점의 일상을 요약하자면 ‘고요한 가운데 번잡함’일 것이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오면 풀려버린 운동화 끈처럼 맥을 놓아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즈음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동질감을 느낀다. 김종삼의 시 ‘묵화’ 속 할머니와 소처럼 서로의 부은 발잔등을 위로하고 싶어진다. 그날 밤 찾아온 학생은 문 닫을 시간을 넘겨서까지 책장 앞을 서성였다. 잠시 후 계산대 앞에 다가선 그는 시집..

[문태준 따뜻한시] 돌멩이들 - 장석남(1965~) [조선/ 24-04-01]

돌멩이들 - 장석남(1965~ ) 바닷소리 새까만 돌멩이 너덧 알을 주워다 책상 위에 풀어놓고 읽던 책 갈피에도 끼워두고 세간 기울어진 자리도 괴곤 했다 잠 아니 오는 밤에는 나머지 것들 물끄러미 치어다도 보다가 맨 처음 이 돌멩이들 있던 자리까지를 궁금해하노라면, 구름 지나는 그림자에 귀 먹먹해지는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매인 늦둥이 송아지 눈매에 얹힌 낮달처럼 저나 나나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듯 외따로 있다는 것이, 바닷가에서 주워 온 돌이 몇 개 있다. 까만 돌의 표면에는 물결무늬가 흐르고 파도 소리가 들려왔을 것이다. 몽돌이며 모서리가 덜 깎인 돌, 그리고 조각돌도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돌로 책장을 눌러놓거나 집 안 살림에 쓰는 물건의 평형을 맞추려고 아래를 받치기도 한다. 그러다 돌이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