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 진은영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만 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가을, 주먹을 꼭 쥐어본다
시를 쓰는 선배가 문자를 보내왔다. 꿈에 내가 나왔다면서. 좋은 꿈인 것 같다고 그랬다. “여름 동안 서점은 어땠니? 비도 많고 더워서 힘들었겠다. 가을이야. 독서의 계절. 좋아질 테니 힘내.” 하고 덧붙였다. 정말 좋은 일이 있으려나 은근 기대를 하다가 마지막 문장쯤에서는 슬쩍 새침해졌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닌 것 같아서.
6년 동안 서점을 하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가을은 찾아오는 독자 수가 가장 적은 때이다. 첫해 가을 꽤나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여태 남아 있다. 우리 서점만의 문제인 것이냐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지인은 껄껄 웃으며, 가을은 사람들이 제일 책을 멀리하는 시기라서 책을 읽게 하려고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속설이 있다더라 했다. 그는 겨울이 되면 나아질 테니 힘내, 라고 했었다. 일단 파란 하늘을 구경하고 있자면, 당장 나부터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날씨에 책을 펴놓기란 참 쉽지 않은 것이지.
재미있다. 여름은 더워서, 가을은 높고 화창해서, 겨울은 춥고 손 시려우니, 봄은 설레는 계절이라서 책 읽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그렇다면 왜 힘을 내야 하나. 삐딱해진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왜긴 왜야.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래야 무엇이든 더 나아져서 마침내 좋아지는 것 아닌가. 시를 쓰는 선배도 출판사를 운영하는 지인도 그리고 나도 읽기의 좋음을 믿고 사는 사람들. 그러니 힘내. 하고 마음을 다져본다. 주먹을 꼭 쥐어보았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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