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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쉽게 내다 버린 것들 [문화/ 2022-08-24]

설지선 2022. 8. 24. 13:38




히든 피스 - 이소연


그릇은 흩어지기 위해 모여 있다
그릇은 깨지기 위해 모여 있다
그릇이 쌓여 나보다 오래 가정을 지킨다

그토록 많은 그릇이 깨져도
멸종되지 않는 오목한 세계
품을 수 있는 세계에 종말이란 없다는 듯

- (이소연 시집 ‘거의 모든 기쁨’)




쉽게 내다 버린 것들




서점에 놓아두었던, 몇 없는 그릇 중 하나를 깼다. 사소한 불운 하나로부터 종일, 좋지 않은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나의 나쁜 습관 중 하나다. 고작 그릇 하나일 뿐인데. 망연히 서 있던 마음을 다잡고 일단 큰 조각부터 모아 본다. “고작 그릇 하나”라고? 아닐 것이다. 거기에 담겨 있던 온갖 기억을 떠올리다가 도리질을 치고 말았다.

물성(物性)이란 물질이 가진 성질을 뜻하는 단어다. 종별로 고유한 특징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쓸모와 가치를 갖기 이전에 각기 다름에 의해 차이를 두고 있는 사물들. 일테면 볼펜에는 볼펜만의, 종이에는 종이만의 어떤 것이 있어서, 그것들은 적고 적히고 딸깍거리며 손장난의 대상이 되거나 비행기 모양으로 접혀 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나와 관계돼 의미와 기억이 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깨져버린 그릇의 조각들을 넣으려 쓰레기통을 열다가 내가 쉽게 버린 것들을 생각해 본다. 무엇이든 너무 많은 시대다. 그것을 소비란 이름으로 정당화할 뿐이다. 깨졌으니 구매하면 그만이요, 그러니 특별할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 것이 요즘의 논리가 아닌지.

작은 사기 조각에 손가락을 찔렸다. 핏방울은 맺히지 않았으나 슬쩍 붉어진 손가락을 보면서, 부아가 나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미안해지고 만다. 너를 들였으니 아껴 대했어야 마땅했다. 미안하다. 나는 그릇에 사과하는 나의 꼴이 그저 우습게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유씨 부인이 적은 조침문(弔針文)처럼 근사한 애도문을 적지는 못하더라도.[유희경 시인·서점지기]